웃음과 기억을 선물로 받고 싶다고

라디오피디의 편지_2

by 기림

기사를 편집하고 있는 너에게,


요즘은 어떤 기사를 편집하고 있어? 제목이 편집의 전부는 아니지만 편집 하면 제목 달기가 먼저 떠올라. 통신사 기자였을 땐 기사에 제목까지 같이 달아서 올렸어야 했거든. 그때마다 제목 짓기가 어려운 거야.


길면 구구절절이고, 짧으면 의미가 충분히 전달 안 되는 것 같고. 또 한편으론 포털에 올라가는 기사 경쟁이 한창 심할 때여서 독자 눈에 띄게 달라고 지시를 많이 받았거든. 그 '눈에 띈다'는 것이 뭔지… 그때도 지금도 잘 모르겠어. "시시콜콜한 것도 살리고 싶"은 정수는 아마 적잖은 시간을 들여 기사 제목을 다듬고 또 다듬고 있겠지?


라디오가 처음에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끊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거였어. 줄줄줄, 때론 이 얘기했다가 저 얘기했다가 짧으면 한 시간, 길면 두 시간 동안 말이지. 그런데 라디오엔 마침표가 없을 뿐이지 시계가 있더라구. 편성표가 준 시간만큼만 프로그램은 진행되니까 모든 말을 할 순 없어. 그 이야기인즉슨 모든 사연을 읽을 수 없단 거지.


요즘엔 라디오 사연량이 예전만 못하지만 청취자들은 매일 말을 거는 라디오에게 바뀐 환경에 맞춰 대답해주고 있어. 편지가 아닌 인터넷 게시글로, 짧은 문자 메시지로, 그것보다도 가벼운 라디오 어플리케이션 메시지로 말이지.


물론 전문 용어로 '꾼'들의 상품 타깃 웰메이드 사연도 많기는 한데 '진심'이 느껴지는 사연이 더 많거든. 세상에 진심이라니. 이 얼마나 순진하고 유치한 걸 알면서도 쉽게 무릎 꿇고 싶어지게 만드는 단어니.

최근에 프로그램에서 '내가 선물로 받고 싶은 것'을 주제로 청취자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었어. 쾌활한 낮 프로그램에선 이런 주제를 던지면 보통 '남편의 보너스' 같은 속세 스멜 물씬 풍기는 답변부터 '시간을 되돌려 미혼으로 살고 싶습니다, 타임머신이요' 이런 능청스러운 메시지들이 오거든.


생방송 중에 작가님과 함께 메시지를 보는데 한 문자에서 마음이 넘어져버렸어.


" 치매에 걸리신 어머니의 잃어버린 웃음과 기억을 선물받고 싶습니다."


이건 정말 진심이잖아. 반칙이었어. 난 정말 져버리고 말았어. 청취자를 이기려 한 적도 없었지만 마음이 백기투항. '웃음과 기억'을 선물로 받고 싶다니. 머리 한켠에 하얀 봉투 같은 것만 떠올렸던 스스로가 쑥쓰러워졌어.


라디오에 빠지긴 어려운데 빠지면 나오기 쉽지 않은 게 바로 이런 점 때문인 것 같아. 예상치 못한 진심이 불쑥 나오게 돼. 그게 청취자든, 디제이든,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가는 작가든 피디든. 모르는 사람끼리 보이지 않는 전파로 주고받는 어떤 마음들이 있단 말이지. 나는 이 시시콜콜한 진심들이 좋아서 여기에 왔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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