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기자는 편집자가 아니라 요약자더라

편집기자의 편지_1

by 기림


퇴근하고 한 시간씩을 걸어가는구나. 걷는 건 물론 몸(특히 허리)에 좋지만, 무엇보다 정신에 가장 좋지. 어제는 추분이었고, 이제부턴 밤이 길어지는 날만 남았으니 퇴근길도 어둑해지겠네.

단편적인 사실이 진실을 가리키진 않는다는 거, 참 맞는 말이다. 라쇼몽까지 갈 것도 없지. 한 개의 문장이 무언가를 대표할 수도 없고. 한 사람의 증언이 누군가를 증명해낼 수도 없어. 설령 그게 내가 내 손으로 쓴 일기나 편지여도 마찬가지겠지. 그런데도 사람들도 요약된 한 문장으로 무언가를 전부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늘 무언가를 한 줄로 요약해버리곤 해. 우리네 일터에서 특히나 너무나 많이 겪었던 일이니, 잘 알지.

혹여나 함부로 뱉은 말이 어딘가엔 화살이 되지 않을까 걱정인지, 언니는 속상한 얘기 할 때에도 늘 말을 고르고 골랐던 것 같아. 지난번 편지도 글을 썼다 지웠다, 수없이 덧칠하고 벗겨냈을 모습이 눈에 선해. 라디오 피디에 관한 글을 한 문장 쓰면, 그것이 라디오 피디를 정의하는 말로 누군가에게는 비치지 않을까. 일하다 겪었던 일을 글로 남기면, 맥락 속에 있던 당사자를 공개적으로 저격하는 셈이지 않을까. 가볍게 적은 의견이 문자가 되는 순간, 앞뒤가 생략되는 단편적 주장에 지나지 않을까. 그런 것들을 걱정하는게 아닐까 싶어.

그러한 걱정들이 너무나 이해돼. 지금 내가 하는 일, 신문 편집자의 역할이 바로 그런 일이거든. 긴 기사를 길어봐야 100자 남짓으로 축약해야 하고, 그중에서도 "그래서 어떻다는 건데"에 대한 답을 단 20자 안팎의 짧은 제목으로 제시해야 하는 것이 본질인 것 같아. 문제는, 어떤 사건이나 사람도 단 한 마디로 완전히 대표할 수는 없다는 거지.

사람들은 늘 인내심이 부족해. 모든 게 짧고 단순해야만 받아들일 수 있어. 그래서 일터에서 우리는 줄이고, 또 줄이고. 경중을 가리고 또 가리고. 고치고, 또 고치곤 해. 하지만 난 때때로 시시콜콜한 것도 살리고 싶고, 핵심에선 약간 벗어난 것이 더 재미있기도 하단 말이지?

뼈를 발라내듯 판단과 요약을 거듭하는 일에 쪼금 지칠 무렵, 언니가 이런 편지를 제안하다니 더없이 내 맘에 쏙 들어온다.


가장 중요한 것만 골라낸 단 한 문장이 아니라, 어느 구석 한 뼘 정도는 그래도 본질에 닿아있을 우리의 일상들.
'이 바닥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일반명제까진 아니라도, 그냥 오늘 겪었던 이런저런 황당하거나 재미있었던 얘기들.


누군가는 근시안적인 불만이라며 발끈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생각이 이러한 걸 어쩌겠느냐 싶은 짧은 푸념들.

그런 것들을 기꺼이 나누고 모아본다면 좋겠네. 마침, 나도 벌써부터 끝이 보이는 이 사양 산업을 학습하며 뭔가 답답하던 차였거든. 혼자 걷던 길을 둘이 간다고 더 넓어지거나 반듯해지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적당한 위치에 같이 이정표를 세워갈 수 있을테니 한결 재미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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