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기자의 편지_3
ㅇㅇㅇ의 ㅇㅇㅇㅇ.
라디오 프로그램 이름은 항상 그렇네. 청취자들이 DJ의 편이 된다는 언니 말을 듣고 나니 새삼스럽게 저걸 깨닫는다. 수 년, 수십 년간 그대로인 프로그램명을 두고, 그 앞에 사람 이름이 항상 들어간다는 거. 라디오의 핵심은 사람이구나.
아무리 아침 시사프로그램이라도 결국은 <누구의 시선집중>, <누구의 뉴스쇼>, <누구의 뉴스공장>인 거, 신문은 물론이거니와 TV에도 없는 일이지. 라디오에는 얼굴보다도, 문서보다도, 무엇보다도 목소리가 필요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사람이니까.
뉴스도 다 자기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기는 해. 처음엔 너무나 신기하고 부담스러웠는데, 나중엔 가끔 아쉽기도 했어. 표정과 목소리, 심지어 기분까지 다같이 드러나고 마는 방송과는 달리 신문 기사에서는 모든 '인간다운' 게 제거되고 글자만 남아버리니까. 독자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눈으로도 볼 수 없고 귀로도 들을 수 없잖아.
그나마 이름 석자도 안 나가는 편집자가 되니 정말 '소거된 사람'이 된 것 같았어. 편집은 개인 멋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본보의 편집방향'에 맞춰 일관성을 갖춰야 하니까. 편집부에는 '모두까기' 스타일이거나 대놓고 진보성향인 선배들도 꽤 많은데, 실제로 우리 지면엔 (대외적으론) '한쪽으로 치우침 없는 기계적 중립'에 천착하는 제목이 수두룩하단 말이지?
우리 편을 만드는 것보다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것.
소위 말하는 우리의 '편집방향'은 여기에 가까운 것 같아. 맞는 것인지 잘못된 판단인지는 뭐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다르겠지.
사실 누구의 편을 든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긴 하거든. 특히 제대로 된 유대감(?)이 생기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더 그래. 한번 삐끗했다간 국자로 먹을 욕을 바가지로 먹기 십상이지. 그나마도 원래 내 편이었던 사람들에게나 그렇고, 내 편이 아니었던 사람들에는 오히려 미운털 박힐 핑계만 늘려가는 꼴일 거야.
각종 애칭으로 "청취자 여러분들"을 부를 수 있는 라디오가 그래서 때로 부럽기도 해. 신문은 기명칼럼에서조차 자기 자신을 '나'라고 부르지 않고 '필자'라고 굉~~장히 객관화하거든. 하물며 독자에게 '앵기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우리편을 만드는 방법일지도 몰라. 제목을 <여당의 멈추지 않는 폭주에 야당 못 버티고 결국 장외투쟁>이라고 달지 않고 대신 <여당 "야당이 못났다" 야당 "여당이 너무해">식으로 '공정'하게 다는 게 최소한 절반의 국민들과 등돌리지 않는 방법이긴 할테니까. 그럴 수도 있어 충분히.
휴, 그런데 재미가 없다는 것 만은 정말정말로 확실해.
"이거 봐! 미친 거 아니야?"가 아니라 "쟤네가 이렇다고 하더라. 그냥 그렇다고"로 끝나는 거. "나만 믿고 따라와!"가 아니라 "판단은 너의 몫~"으로 끝나는 거.
미래는 사이다들에게 활짝 열려있을까, 아니면 결국 우리같은 노잼들이 가늘어도 길게 살아남게 될까? 사람들이 둘 중 뭘 더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둘 중 뭘 '덜 싫어할지'도 모르겠긴 매한가지다! 재미는 아무래도 책임감과 반비례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