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피디의 편지_6
TV 편성표가 지면에서 사라져갈 정도로 존재 의미를 잃긴 했지만 아직 유효하긴 한가봐? 브런치 통계를 살펴보니까 'TV 편성표' 키워드 검색으로 유입이 거의 매일 되더라구. 누군가는 계속 TV를 보고 있고, 편성표를 찾고 있다는 뜻이겠지? 의외의 수확이었네. 뭐, 검색 유입이 엄청나게 많진 않았지만 말야. 하하. 자 그럼 라디오 인간도 자신감을 갖고 편지를 이어가볼까나…
신인들과 방송하면 간질간질하다가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어. 아무리 콘텐츠가 많아졌다고 해도 언제나 기회는 한정돼 있잖아. 방송 하나가 신인들에겐 소중한 기회거든. 그들이 얼마나 잘 준비해왔는지, 열심히 방송에 임하는지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런 진심을 잘 전달해주고 싶어져.
최근에 내가 연출하는 방송에 아이돌 신인 그룹 두 팀이 나왔어. 한 팀에서 두 명씩, 총 네 명과 함께하는 방송이었지. 청취자들에게 신인인 그들을 소개하고, 그들이 누구인지 매력을 최대한 '뽑아내야' 하지. 그것도 생방송으로. 한 시간여 동안 말야.
안 그래도 라디오 출연이 거의 처음이다시피 하는데, 생방송인 데다 게다가 자신들의 그룹을 대표해서 나왔으니만큼 긴장감은 말도 못해. 무슨 말을 건네도 얼굴은 생글생글 웃고 있지만 난 알고 있지. 그들이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단 걸.
노래 라이브가 예정돼 있으면 더 긴장을 하곤 해. 생방송은 무를 수가 없어 실수하면 곤란하고 라디오에선 목소리가 더 돋보이니까. 요즘엔 전 세계에서 유튜브로 지켜보고 있다구. 그 중압감이란. 그날은 각 팀별로 라이브가 준비된 날이었으니까… 분위기 대충 상상 가지? 두근두근 긴장백배.
라이브가 있으면 방송 전에 리허설을 해. 음향을 맞추고, 라이브를 하는 데 어려움 없도록 환경을 최대한 맞춰주거나 목이 덜 풀렸다 싶으면 충분히 풀도록 유도하는 점검 시간이야. 흥의 민족으로서 노래방에 자주 가는 편이라 잘 모를 수도 있지만(?) 노래하는 거, 쉬운 일 아니다? 노래하는 목소리가 고스란히 청취자 귀에 꽂히거든.
방송 큐사인을 주고 난 다음엔 나도 모르게 손을 기도하는 포즈로 잡고 있어. 당신의 매력을 짠!하고 보여주길. 불필요한 말실수 하지 않길. 열심히 준비해온 만큼 노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길. 그리하여 부디 청취자들의 반응이 좋기를. 그들도 잘되고 내 방송도 잘되길. 이런 바람들을 담아 손을 모으고 있는 것 같아.
기 살았으면 좋겠어서 방송 중간중간에도 스튜디오에 난입해 칭찬이나 너스레를 멈추지 않는다구. 별 탈 없이 무사히 방송이 끝나면 비로소 긴장이 풀리지. 방송을 마친 분들도 좀 편해보이고, 우리 스태프들은 그들에게 최고였다고 물개 박수 치고. 그런데 리허설 때보다 실력 발휘를 못했다 싶으면 내가 다 아쉬워서 속상하다구. 방송은 두고두고 남기에 더 그래.
막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어진다니깐? 아니 저 분은요, 리허설 땐 훨씬 잘했거든요? 그런데 생방송 중에 긴장해서 실력 발휘를 100% 못했어요. 그리고 저 분은요, 카메라 앵글에 안 잡히는데도 다른 팀 멤버 도와준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요. 피디인 제가 봤다니깐요?
피디는 일단 방송으로 말하는 사람이니깐 충분히 그들을 '살리지' 못했다고 판단이 들면 그날 밤엔 늦게까지 잠을 못 자. 더군다나 불필요한 욕까지 하고 있는 익명의 글을 보게 되면 며칠을 속상해서 속으로 앓지. 그런 경우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도 않아요. (당사자들은 얼마나 더 신경쓰일까? 진짜 악플달지 말자…)
예쁘게 연출해서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주려고 출연 요청한 건데 괜히 나오게 했나, 오만 생각이 다 든다. 이건 내가 좀 소심하고 생각이 많은 편이라 더 그럴 수도 있지만.. 라디오는 그날그날 방송하고 반응이 바로바로 나오니까 매일 성적표 받는 기분이긴 해.
열심히 하는 신인가수 분들을 보고 있노라면 '사회 신인' 시절이 생각나. 얼마나 잘하고 싶을까? 저 분도 열심히 하려는 마음으로 드글드글하겠지? 그런데 의욕만큼 잘 안돼서 밤마다 속상해하겠지? 괜한 감정 이입에 초면인데도 토닥토닥하고 싶어진다니까.
요샌 10대 분들도 많아서 학창 시절도 떠올려봐. 저 나이 때 나는 얼마나 자아 과잉 상태였나… 그런데 저 분은 사회 생활을 하네. 난 진로 고민하기 바빴는데 필드에 나와서 뛰고 있네. 대단하다. 한편으론 좀 더 일찍 철들, 멍들 마음에 안쓰럽기도 하고. 라디오에서라도 따뜻하게 해줘야지! 라고 마음은 먹어본다. 현장에선 바빠서 신경쓸 겨를도 크게 없지만 말야.
앞으로도 라디오를 하면서 신인 분들을 꽤 만나게 되겠지. 몇 년 전에도 한창 많이 봤었는데 다시 본 그 표정은 여전하더라. 몇 년 전에 본 신인과 지난주에 본 신인의 상기된 얼굴이 크게 다르지 않았거든. 들뜬 긴장감. 맑은 기대감. 라디오라서 느낄 수 있는, 여전히 유효한 게 여기 또 있었어. 앞으로 성장할 가수들의 처음을 함께할 수 있는, 그 떨리는 목소리를 떠올릴 수 있는, 시작의 추억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