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스처럼 매일매일 F5

편집기자의 편지_6

by 기림



신인들의 열정은 참 식상하면서도 아름다운 말이지ㅎㅎ 한창 라디오를 들을 때, 나도 초대석 같은 코너를 좋아했었어. 고정게스트들이 입담을 털거나, 디제이가 사연을 읽어주며 이야기하는 시간도 좋아했지만, 언니 말마따나 신인들이 주로 나오는 초대석은 뭔지 모를 들뜸이 느껴졌거든.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디제이가 진행하는데, 어떤 날은 차분하고 어떤 날은 텐션이 머리끝까지 올라가고. 참 다채로운 그 맛에 습관처럼 라디오를 들었던 것 같아. 익숙하지만 지겹지 않고, 매일 새롭게 맛있는 배스킨라빈스같다고나 할까ㅎㅎ


듣는 사람은 이렇게나 쉽게 말하지만, 사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 어려운 일이지. 한 번 들어온 사람이 쉽게 나가지 않도록, 하루에 한 번 서는 장에 이목을 끄는 일 말이야. 심지어 '오늘은 농땡이 좀 피워볼까' 조차 허락되지 않는, 하루도 빈틈없는 곳이니까.




사람들은 각자의 주기에 맞춰 일을 해. 어떤 사람은 일주일 단위로 루틴이 흘러가고, 어떤 사람은 두세달에 걸친 프로젝트를 기준 삼아 일하고. 또 어떤 사람은 1년 단위로 시즌 비시즌 주기가 만들어지기도 하더라고.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 단위가 정확하게 '하루'야. 일간지를 만드는 나, 매일 정해진 시간에 방송을 꾸리는 언니는 그런 점에서 비슷한 시계추를 가지고 일하는 셈이지.


취재를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때, 어떤 선배가 했던 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 밤 열한시에 야근을 끝내고 나면 꼭 맥주 한 잔을 하는 분이었는데, 그 이유를 말하길... "우리는 일용직 노동자라, 하루에 쌓인 먼지를 그날그날 씻어줘야 한다."


그땐 그 말이 투정에 가까운 비유라고만 생각했어. 한편으론 일용직 노동자를 건설현장 ‘노가다’로 여기는 말이지 않나, 조금 불편하기도 했고.


근데 일을 하면 할수록 조금씩 공감하게 되더라. 곱고 예쁜 것만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때로는, 아니, 사실 거의 매일은 흙먼지 이는 땅에서 일해야 하고. 오늘을 어찌어찌 열심히 보냈더라도 (취재기자의 경우엔) 내일 쓸 거리가 없으면 저녁마다 걱정인 곳이니 말이야. 완전히 비슷하다고 할 순 없지만, 통하는 면이 있지. 하루의 진을 다해 일하고, 털어내고, 다음날이 오면 다시 반복하고…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라는 게 때로는 얼마나 밑빠진 독에 물 붓기 같던지. 어떤 친구들은 월화수목에 바삐 일을 당겨서 마무리하고 금토일을 쉬거나, 오후 반차를 내겠다며 오전에 일찍 출근하기도 해.


반면 하루에 세 번 마감시간이 정해진 신문사나 하루에 한번 방송시간이 정해진 방송국은 단 하루라도 시간을 어기면 말 그대로 '빵꾸'가 나니, 어찌보면 진정한 의미에서 '시간의 노예'인 거지. 매일매일 거대한 돌덩이를 산 위로 굴리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처럼 말이야.


한동안은 ‘어제 아무리 잘했어도, 오늘을 망치면 소용이 없다’는 것에 짓눌려 살기도 했어. 그래도 이제는 반대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우리의 일터는 매일 아침 새로고침이 되는 곳이라고. 어제 좀 실수했어도 오늘 잘하면 된다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이야. 매일매일이 시험이지만, 그만큼 기회도 더 많은 거라고.




어차피 매일 F5가 눌러지는 곳이니, 하루하루 사고만 없으면 된다는 정신으로 그저 버티는 사람들도 분명 있어. 에너지를 덜 들여가며 생존하는 방식이지. 멍하니 있다간 나도 모르게 그렇게 지내게 되더라고.


하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매일을 다른 무대처럼 생각하려고.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는 분명 같겠지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까지도 일말의 발전없는 똑같은 사람이긴 아쉽잖아?

keyword
이전 11화라디오와 신인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