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림 Nov 06. 2023

지나고야 끝났음을 아는 여름이, 청춘이

김연수, <너무나 많은 여름이>, 레제(2023)



온 여름을 쏟아부었던 일이 여름과 함께 지나갔다. 2023년의 여름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접힌다. 조금씩 소매가 긴 옷을 찾기 시작할 즈음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집어들었다. 손등까지 삐죽 나온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생각했다.


내가 사랑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게 무엇이었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것도 모르면서, 헤어진다. 어쩌면 조금씩 변해가던 모든 것들에 하루하루 차여갔던 걸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많은 여름이, 지나갔다. 그럼에도 너무나 많은 여름이 또 아무렇지 않게 찾아올 테니.




그러나 그 싸움 뒤로 친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내게는 여전히 다정했지만, 다른 학교의 싸움꾼들과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고, 여자애를 사귀었다. 그 모습에 나는 실망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처럼 슬펐다. (...)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조금씩 변해갔다. (36쪽)




"나를 사랑하긴 한 거야?"

화영이 물었다. 기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헤어질 수가 있어? 난 그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화영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인생은 그런 것이다. 납득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때도 지금처럼 서로 얘기했다면 헤어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와서 십 년 전의 일을 따져가며 왜 그랬냐고 묻는 건 무의미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든 일들이 납득되리라. 기태는 그렇게 생각했다. (154쪽)




"책임감?"

"다르게 말하면 영향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런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그리고 그 사실을 제가 알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저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제가 영향을 받는 만큼 그 사건이나 죽은 아이들의 의미도 달라질 테고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책임감이에요. 그 사건에 기꺼이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주겠다는 것." (236쪽)



매거진의 이전글 오기환 <스토리 : 흥행하는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