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연재소설

by 방랑자

고독은 좋았지만 외로움은 좋지 않았다.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니지만 외로움과 맞서면 두려웠다. 고요한 독방에 앉아 명상을 하면 종종 외로움이 덮쳤다. 마음속으로 손사래를 치지만 쉽게 달아나지 않았다. 외로운 감정에 정신이 집중되어 알아차림에도 외로운 감정은 지속됐다. 사는 게 무엇이라고 사람을 다양한 감정으로 피곤하게 하는지, 가끔은 개처럼 살고 싶기도 했다. 감정이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으며 잠이 오면 잠자고, 배가 고프면 밥 먹고, 쓴소리 하고 싶으면 쓴소리 하고, 웃고 싶으면 실컷 웃고 싶었다. 단순하게 살고 싶었다. 생각은 오래 할 수 있지만 결정과 행동은 빠를수록 좋았다. 삶을 살아내는 과정이 조금은 쉽게 가길 원했다. 생각한 대로 마음먹은 대로 행동하고 살아온 지난 수년이 후회되지 않았지만, 때로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아 눈물 훔친 적도 많았다.


사람들이 무진을 보며 자유로운 영혼이라 말했다. 하고 싶은 대로 살며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고 말했다. 부러워서 그런 건 아닐 게다. 무진의 삶이 조금은 달라 보였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무진의 행동에는 나름의 고충이 있었고, 결단이 필요할 때 대담하게 결정을 내렸을 뿐이다. 신중을 기하여 깊이 생각하고 내린 결정들이다. 알아주길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줄곧 무진을 향해 자유로운 영혼이라 말할 때 무진은 그 말이 달갑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말이 듣기 싫어 네팔에 다시 찾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떠나고 싶었다. 기주와 함께 트레킹 한 5개월의 시간이 무진에겐 큰 기쁨이었고 살아가는 방식을 새롭게 깨우친 날들이었다. 네팔 여행이 끝나고 오랜 시간 그곳을 그리워했다. 마음에 걸려 풀리지 않아 그리움이 계속 쌓여갔다. 그렇다고 한국생활 적응을 못한 것은 아니었다. 삶은 계속 이어가야 할 일이었고 바쁨과 느림이 섞여 나름의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만은 네팔을 다시 찾게 만든 큰 이유였을 것이다.


트리부반 국제공항에 발을 내딛고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눈을 감았다. 지난날 공항에 도착해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그때 느낀 감정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짜릿한 느낌은 여전했다. 위치과 구조도 익숙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달라져 있지 않았다. 기억 속에 맴돌았던 이곳이 현실이 됐을 때 무진은 익숙하게 거리를 활보했다. 새로 생긴 건물과 눈에 띄는 식당들이 많이 보였지만 구조는 전과 다르지 않았다. 달라질 수 없었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진의 여파로 도로의 아스팔트가 뒤틀려 있고 흙먼지는 더 많이 날아다녔다. 타멜 거리는 비포장 도로답게 타멜로 들어서는 택시 안에서도 흔들림이 심했고 혼돈의 카오스처럼 다가왔다. 그것이 싫지는 않았다. 이곳이 타멜이었으니까.


스테이크가 먹고 싶었다. 타멜에 가면 꼭 다시 먹고 싶은 음식이었다. 싸고 맛있고 양도 푸짐한 스테이크였다. 한식당에도 찾아가 한식을 먹었고 일본 돈가스 집에도 들렸다. 하루 종일 걷고 먹고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포카라로 이동후 3개월간은 숙소에 머물며 여행객들을 만났다. 그들과 이야기 나누고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은 방에서 나오지 않고 하루 종일 책을 읽기도 했고, 하루 종일 로비로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시간은 잘 흘러갔다. 오히려 더 빨리 시간이 가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가까워진 사람도 있었고 장기 투숙객과는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기도 했다. 떠나는 사람이 생기면 술자리를 가졌고 새로운 사람이 생기면 또 술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도 항상 헤어짐은 쉽지 않았다. 그간 정이 들어 사람을 보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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