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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자 Jul 10. 2017

#59

연재소설

비오는 날이 있었다. 허기를 달래려 고독한 식사를 했다. 반찬 가득 풍성한 밥상이었다. 허기는 달랬다. 하지만 고독은 고독이었다. 뒤늦게 기주에게서 연락이 왔다. 금요일 저녁 퇴근이 늦었다. 술을 사갈테니 안주거리를 준비하라고 했다.


기주는 10시를 넘어서 도착했다. 검은봉다리에 소주 2병과 맥주 피쳐 두 병을 사들고 왔다. 무진은 골뱅이 소면과 감자전을 만들었다. 술상을 차렸다.

요가매트에 앉은 기주는 소맥을 제조했다. 한 잔 거하게 들이켰다. 톡쏘는 맛에 알싸한 소주맛이 일품이었다. 두 번째 잔을 다시 말았다. 연거푸 두 잔을 말없이 마셨다. 굳이 묻지 않았다. 갑자기 술이 마시고 싶은 날이 있기 때문이다.  


골뱅이소면이 먹고 싶었다. 낭가르타샹에서 내려와 롯지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 빈둥빈둥 거릴 때였다. 소주 생각이 났다. 매콤하고 쫄깃한 골뱅이소면에 땡겼다. 기주에게 말하려는 찰나 기주에 입에서 먼저 그 말이 나왔다.


-소면이 땡긴다. 매콤하게 해서 골뱅이 넣어서. 소맥 한 잔이면 하루의 피로가 가실텐데. 언제 먹어보나. 소맥을. 카트만두 가서도 못먹겠지?

-못먹어. 비싸서. 엄청비싸. 록시 있다니까 그걸 마셔야지.

-30도 넘으면 엄청 독한거 아닌가.  중국음식이랑 어울릴것 같은데. 깐쇼새우랑. 진짜 먹어야겠다. 라면에 김치도 먹고 싶은데.,

-나는 그냥 흰쌀밥에 고추장이랑 참기름 섞어서 김에 싸먹고 싶다.

-아무거나 좋으니까 한식만 있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어우 허기져. 올라갔다오니까 또 배고프네. 잘 챙겨먹는데 살이 빠지는거 보면 트레킹 할만 해.

-그치? 괜찮다니까. 먹는거 맘껏먹지. 살도 빠지지. 굳이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어. 열심히 걷는거. 그게 전부야.


옷 품이 여유로웠다. 꽉 맞던 바지가 느슨해졌다. 쫄쫄이 같던 반팔티도 소매에 빈틈이 생겼다. 꼬질꼬질해 졌지만 몸은 그새 변해 있었다. 눈매가 점점 깊어지고 턱선이 더 날렵해졌다. 콧등에 살도 없어져 더 오똑해 보였다. 트레커들은 남루한 행색을 감출수 없었지만 다들 선이 살아있었다.


어제 오후에 만난 한국 부녀는 오늘 아침 두클라로 떠났다. 컨디션이 좋으면 로부체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겠지만 산에서 혹 하산길에 만나게 되면 술 한잔 하자고 하셨다.


해가 졌다. 밤이 왔다. 파란 하늘은 금빛색을 띠더니 곧 검정색으로 바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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