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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자 Jul 11. 2017

#60

연재소설

무슨 바람이었을까. 예기치 않은 낯선 바람에 마음이 흔들렸다. 중심잡고 흔들리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는데 또다시 방황이 시작됐다. 우리는 말 없이 서 있었다. 몇대의 버스가 사람들을 태우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좌우 널찍히 서 있었다. 가을 보도블럭이 깔린 길 위에는 단풍이 바람에 휘날렸다. 말문을 트기 어려웠다. 둘 사이만 아는 이상 기류가 정류장을 가득 메웠다. 기주가 말했다.


-그만, 이제 그만하자.


속마음은 다시 잡아달라고 내가 힘들어할 때 그만 하자고 할 때 다시 잡아달라고, 나는 그래야 살 수 있다고 무진에게 말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시 붙잡아 주길 원했다. 우리가 싸우고 다시 화가 풀리고 말했던 그 말들을 기억하길 원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무진은 홀로 남겨두고 밖으로 나갔고 대화를 하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말 뿐이었다. 기주가 원했던 건 대화였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대화가 필요했다. 몇번은 풀었다. 싫다고 얘기하기 싫다고 뿌리친 손을 몇번이고 다시 붙잡고 대화를 이어갔다. 버틸 수 있었던 오직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그 사람. 가장 가까운 사람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이 사람이 마지막이길 바랐다.


긴 호흡을 이어갔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붙잡아 주길 원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상한 흐름에 선뜻 말하지 못했다. 버스 3대를 더 보냈다. 이윽고 무진이 말문을 열었다.


-우리 국밥집 가자.


버스가 도착했다. 4212번. 한 자리 비어 있었다. 눈빛으로 말해도 눈빛으로 알아챈, 깨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그랬다. 얼굴은 굳어 있었다. 풀리기 쉽지 않을 모습이었다. 어깨에 힘이 들어 있었다. 눈매에 슬픔이 보였다.


아파서 미칠지경인데 알지 못한다. 미련한 이 사람은 그걸 눈치채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 이미 알고 있어.  이상한 공기가 가로 막고 있는거.



불현듯 그 때의 기억이 무진에게 스쳤다. 갑자기 왜 그 생각이 났는지 몰랐다. 불편했나. 아니면 공기가 그때와 비슷했나, 아니면 저녁식사가 떠올리게 했나.  

-무슨 생각해? 왜 그러고 있어 멍하게?

-아니야. 아무것도.

-뭔데, 너 그럴때 마다 뭔가 있잖아. 말해봐.

-아니. 갑자기 그 때 생각이 나서. 왜, 우리 버스 정류장에서 국밥집 가던 날. 그만 하자고 했던 날.

-버스 정류장이라니. 그 전부터지.

-그랬나? 내 기억엔 버스정류장인데.

-진짜 모르네. 그 날 보다 더 전전이지. 아무튼. 그게 왜?

-몰라 불현듯 떠올랐어. 그리고 국밥집 가서 오래만에 긴 이야기를 했지.

-그 때 그렇게 얘기안했으면 우린 벌써 끝났어.

-그렇긴 하지. 벌써 끝나도 한참이지.

-별 얘기 아니지 사실.

-말문이 트여야 얘기가 나오는데 거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지.

-소주 3잔을 마시고 나서야 말하셨지요. 세상 진지한 모습으로다가.




-어떻게 시작해야 되는지 모르겠는데. 요새 우리 힘들지. 너도 바쁘고 나도 바쁘고. 연락도 자주 못했어. 메세지를 보내도 느낌이라는 게 있는데 점점 차가워졌지. 통화를 해도 목소리도 낯설고 그런 너의 반응도 너무 차가웠어. 이러다 며칠이 지나면 풀어질 일이 아니구나. 생각했지. 너가 얘기했었잖아. 다른 사람들은 네가 이뻐보인다고 전보다 많이 밝아졌다고 그런데 정작 나는 그런말도 안하고 쳐다볼때도 흘겨볼때도 있고. 손 잡고 걸을때 전화를 받거나 두 손이 필요할 때면 손을 한 번 꼭잡고 놓아도 될 것을 나는 뿌리치듯 손을 뗀다고.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상처 받는다고.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거든. 얘기해줘서 알았지. 우리가 벌써 5년이 넘어가는데 처음처럼 불꽃이 튈 수 없다는 거, 있어도 처음과는 다른 감정일꺼야. 전보다 더 잘하겠단 말은 못하겠어. 전과는 다를 수 있지만 노력할께.


-이렇게 말이라도 할 수 있는거잖아. 그게 그렇게 어려웠어?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하면 큰 죄를 짓는 것처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그것도 아니면 말조차 안하니까 내가 오해 하잖아. 같은 말을 자꾸 반복하게 되니까 지치는거야. 이 사람이 아무말도 안하면 난 자꾸 상상 한단말이야. 내가 큰걸 바래? 나도 알아 처음이랑 다르다는거. 그치만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까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들어. 회사에서나 다른일로 아무리 힘들어도 같이 있으면 그걸로 위로가 된단 말이야. 말하지 않아도 하소연 안해도 이미 위로가 된다구. 내가 어떤말을 한들 네가 미워서 얘기 하겠니? 그렇지 안잖아. 이런 내 마음을 몰라주니까 더 서운한거야. 우리 약속 했잖아. 대화 자주 하자구. 메세지로 해도 글로 다 속 마음까지 표현이 안되니 얼굴보고 대화하자구. 열흘도 지났어.


-벌써 그렇게 됐구나. 해야지 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어. 미안해.


-미안하단 말도 그만해. 툭하면 미안해. 입만 아주 자동으로 나와. 미안하면 미안해 할 일을 하지 말든가. 진짜 속상하게.


-알았어 안 할께. 자. 소주 받으시오.

-내가 따라 마실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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