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곳으로
내 표정을 살피던 현원장이라는 분이 말했다.
"어머~ 기억이 안 나나 봐요?"
"두 분 아는 사이였나요? 현원장님~!"
최강 대표원장이 놀라며 물었다.
"네~ 저런 그런데.... 표정을 보아하니..... 저만 아는 사이인가 봐요~ 호! 호! 호!"
현원장이라는 사람은 내가 자기를 기억 못 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고 재밌다는 듯이 밝게 웃었다. 게다가 대표원장 앞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오히려 대표원장이 현원장이라는 사람의 눈치를 살피는 모양새였다.
'그나저나, 언제 봤다는 거지?'
나는 기억의 한 조각이라도 찾으려고 해마의 이쪽저쪽을 다 뒤져 봤지만 쉬이 찾을 수가 없었다.
"2002년 맥줏집! 라플라스 변환 증명!"
내가 기억을 뒤지고 있는 모습이 불쌍했던지 현원장이라는 사람이 힌트를 주듯 불쑥 단어들을 내뱉었다. 근데 신기하게도 그 단어들을 듣자 기억에 걸어 두었던 최면이라도 풀리듯 갑자기 그 시절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친구 손찬영이와 함께 경윤대 북문 맥줏집 두다리에서 노가리안주에 생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옆테이블에서 여학생 두 명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지 않은 가?
시간이 지날수록 취기가 오르는지 목소리는 점점 커져 우리는 일부러 들으려 하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며칠 뒤 있을 발표에서 라플라스의 변환을 증명해야 하는 데 네가 맞네, 내가 맞네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근데 더 가관인 것은 둘 다 틀렸다는 것이다. 둘 다 틀린 답을 가지고 티격태격 큰 소리로 술집에서 논쟁을 하고 있으니 가관이었다.
당시 나는 1학년이었지만 고등학교 수학경시대회를 준비하면서 라플라스 변환 증명을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 찬영이가 조용히 말했다.
"야~진짜 시끄러워서 술을 못 묵겠다. 니가 가서 해결해 주고 와라~쫌~"
첨에는 그냥 흘려들었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어쩔 수없이 개입을 하게 되었다.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둘 다 틀린 답을 가지고 싸움이 나게 생긴 것이다.
"저기 죄송한데요 옆테이블인데요 제가 증명을 도와 드려도 될까요? 노트 좀 빌릴게요~"
낯선 불청객이 불쑥 끼어들자~두 여학생은 어리둥절하면서도 끝나지 않을 거 같은 논쟁을 도와준다고 하니 뭐에 홀린 듯이 노트를 내밀고 집중해서 증명을 써 내려가는 연습장을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증명이 끝나고 볼펜을 내려놓자
"야~우리 둘 다 틀린 답을 가지고 서로 맞다고 싸우고 있었던 거야? 히~ 히~ 히~완전 웃기네~~"
하며 두 여학생은 또 이번에는 한 참을 웃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알고 있었으면 진작 알려주지~틀린 답을 가지고 서로 우기는 꼴이었으니 얼마나 웃겼겠어요~? 구경하는 재미가 좋았겠어요?"
똥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을 낀 한 여학생이 말했다.
'뭐지?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거잖아? 괜히 끼어들었나? 그래도 도와준 사람한테 이건 아니지!'
나는 잠깐 당황했지만 그래도 생각을 정리하고 따지려 했다.
그런데 선수를 뺏겨버렸다.
"됐고~ 그쪽이 잘 못했으니 술 사세요~~"
그 똥머리 여학생이 말했다.
"네~제가 도와드려 문제가 해결 됐는데 왜 제가 술을 사요? 술을 사려면 그쪽에서 사야죠? 진짜 적반하장이네....."
내가 되받아치자
"그래요? 그럼 제가 술 살게요~감사의 의미로 같이 한잔해요~우린 기공과(기계공학과) 2학년이에요~내 이름은 현지혜고요~~"
그때 그 똥머리 여학생 성이 현 씨였었다. 그때 나도 수교과(수학교육과) 1학년 백강현이라고 통성명을 했었다.
'근데, 그 여학생이 지금 이 현원장이랑 같은 사람이라고?'
스타일이 너무 달라져도 완전 180도로 달라져 있었다. 헝클어져 대충 묶었던 똥머리는 찰랑찰랑한 단발의 윤기 있는 머리로, 검은 뿔테 안경의 졸린 눈은 푸른빛이 도는 신비한 생기 있는 렌즈의 큰 눈으로, 대충 걸쳐 입었던 셔츠와 바지는 깔끔한 투피스의 정장으로, 무엇보다 그때는 펑퍼짐하게까지 보였던 몸매였는데 지금은 옷이 날개여서 그런지 늘씬하고 쫙 빠진 몸매로 변해있었다.
"아니~~ 그럼 그때 그 똥머리??"
내가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말하자
"호~호~호~ 이제야 생각이 나는 모양이네요~ 백 선생님~^^"
현원장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 두 분이 전부터 아시는 사이였군요~어쩐지 현원장님이 백 선생님 이름을 듣자마자 너무 적극적이어서 궁금하긴 했었어요~"
최강 대표원장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끼어들었다.
"네~그 이유라면, 경윤대학교 수교과 백강현이라는 이름이 흥미가 있기도 했지만 학생평가 두 번연속 100점인 선생님이라고 해서 더 구미가 당겼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그리고 지금 보니 백 선생님은 나에 대한 기억 따위는 아예 안 하고 살았던 것 같으니 아는 사이라는 게 약간은 무색해지네요~ 예전에 한 번 안면을 튼 사이라고 해두죠~ "
약간의 서운한 감정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아니~스타일이 너무 많이 달라지셔서...."
내가 몰라봤던 것에 대한 변명을 하자
"호~호~제가 그때 그렇게 별로였나요? 나름 기공과 여신이었는데~호~호~"
현원장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났는지
"그래~백 선생님 결정은 하셨나요?"
"네? 무슨 결정을요?"
"우리 학원으로 가시는 거요?"
난 갑자기 등장한 10년 전의 똥머리 여학생의 등장에 놀라 지금 여기서 왜 현원장을 만나고 있는지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그게 당장 결정하기 어렵다고 원장님을 뵙고 결정을 하고 싶다고 해서요~"
최강 대표원장이 상황을 수습해 줬다.
"아~그랬군요~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세요~백 선생님~월급이랑 근무조건은 제시했던 것보단 나쁘진 않을 거예요~"
"하겠습니다~"
"네?"
갑작스러운 승낙에 놀랐던지 현원장이 되물었다.
"원장님이랑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재어 보고 결정할 줄 알았더니 일이 되려니 또 이렇게 쉽게 성사가 되네요~ "
최강 대표원장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그러게요~백 선생님. 이렇게 금방 결정하신 연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현원장이 내게 물었다.
"원장님이 발산하시는 에너지, 원장님께 느껴지는 아우라가 맘에 들었습니다. 전 긍정적이고 밝은 느낌의 사람을 좋아합니다. 특히 그 사람이 같이 일해야 하는 직장상사나 오너라면요~ 원장님께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같이 일해보고 싶은 분이라 바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막힘없는 내 대답이 맘에 들었는지 현원장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제가 또 한 긍정하죠? 근데 약간 아쉽네요~~ 전 또 제가 예쁘서, 이상형이라 바로 결정한 줄 알았어요~호~호~호~농담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저희 원으로 이동하셔서 나머지 얘기 나누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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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