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쓰려던 책의 소개글
대학 시절을 돌이켜보면 부모님이 기업 임원인 친구를 만나도, 부모님이 신용불량자인 친구를 만나도 늘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울고 웃었다. 돈이 없다는 푸념, 취직을 어떻게 할까, 집을 어떻게 살까 하는 걱정, 여행이나 다니고 싶고, 카페나 차려서 먹고살고 싶다는 농담. 부모님이 기숙사비나 월세를 내주는 친구, 스스로 월세를 내야 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 정부 지원의 청년전세대출을 받는 친구를 만나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가끔은 사회 탓을 하고, 주로 스스로를 탓하고, 술을 마시면 부모를 탓했다.
‘뭐 엄청 대단한 거 되고 싶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아등바등해야 하는 거지?’라는 의문과 사실은 우리가 바라는 게 ‘엄청난 거’ 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공존했다. 내 능력인지 부모의 능력인지 헷갈리는 순간에는 결국 우리는 다 같이 ‘각자’ 더 노력하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88만 원 세대로 불리던 선배들이 졸업할 때 즈음 대학에 입학해서,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위로를 듣고 화를 냈더니 N포 세대로 불리면서, 스스로의 수저 색을 추측하면서 졸업했다.
아마 우리가 만났던 대학생들도 그랬을 것이다. 누군가는 포기하고, 포기하는 대신 다른 것을 위해서 계속해서 노력하면서. 다들 원하던 세상에서 가장 되기 어렵다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있기를 바란다. 그 평범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게 늘 문제겠지만 이런 지적은 다음으로 미루고,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준 사람들을 위해 감사하다는 말로 대신한다. 이 책을 읽고 공감해주시는 분이 계신다면 이미 충분히 감사하지만, N포 세대라는 말은 별로라고 이야기해준다면 더욱 고마울 것 같다. 그 명칭을 청년에 붙이기에는 여전히 애쓰고 있는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2015년의 이야기들.
시간이 지나 논문은 나왔다. 짧은 책으로 내자고 해서 썼지만, 몇몇 이유로 책은 내지 않았다. 친구 중엔 없었지만 친구의 친구 중엔 부모님이 집을 매매해주는 누군가도 있었다. 월세 보증금을 스스로 구해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는 짜증스러웠다. 그와는 별개로 인생에 여러 기회가 있었고, 대부분의 경우 그것을 얻었다. 앞으로는 또 다른 삶이다. 학문과 연관된 정체성을 버리니 글 쓰는 것도 올리는 것도 쉬워졌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이건 꽤 만족스럽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이 모두 흙수저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정규분포로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을 다분히 쥔, 다만 상층이라고 부를 만한 계층의 사람들도 만날 일이 많아 고달픈 누군가들이었다. IMF의 유년기를 기억하는 사람들. 한 번의 선택이 돌이킬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도전의 기회비용을 계산할 줄 아는 똑똑한 사람들.
학부 출신 성적 우수자 장학금을 받아 석사 진학을 하겠다고 낑낑거렸고, 원하던 걸 얻고, 그 결과로 이어진 몇 년이 지났다. 월세 보증금 생각을 하다가 여러 가지 개인사 덕에 경로의존성에서 벗어났다. 기회비용을 고려하지 않는 선택을 오래 유지할 수 있었다. 행운이다.
돈이 없을 때 가족 사이에 주고받는 날 선 말을 한 번도 주고받지 않았다. 아빠와 나는 각자 알아서 살기로 자연스럽게 택했고, 우리는 서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서로에게 어떤 선택을 강요한 적도 각자의 선택을 포기한 적도 없다. 그 역시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