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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떨결정 May 28. 2024

목돈 구하기

내 행운의 목록

2019년 가을에서 겨울이 된 어느 때 직장을 옮겼다. 금요일에 퇴사하고 월요일에 출근하게 된 새 직장은 강남에 있었다.


친구네 집에서 출퇴근하기에는 멀었다. 여전히 월세 보증금할 돈은 없었지만 방을 구하는 건 쉬웠다. 강남에는 3개월로 계약하는 무보증 단기 월세 원룸이 많다. 그것도 모두 풀옵션이다.


월세 70. 집주인 아주머니는 75를 못 받은 것을 아쉬워하셨다. 원래 80에 나가던 방이라나. 관리비 6.

강제 옵션인 인터넷과 TV. 나는 집에서 TV를 보지 않고, 인터넷도 필요 없지만 옵션을 뺄 순 없다.

수도세, 전기 및 가스비를 모두 내면 83~85만 원 정도가 매달 나간다.


3개월만 살고 옮길 줄 알았는데, 8개월을 살았다. 회사를 걸어 다닐 수 있는 건 좋았다. 내가 살았던 집 중에 가장 신식이었고, 가장 깔끔했다. 하지만 비쌌다.


강남역 출퇴근 지하철을 겪지 않아도 되는 데 얼마의 비용을 지불하는 게 합리적일까?

매일 왕복 2,500원씩 20일이라고 가정하면 5만 원.

출퇴근 왕복 1.5시간 최저시급으로 대략 계산하고, 20일 약 25만 원.


대학시절 나는 내 1시간을 1만 원보다 높게 책정하여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했지만, 대학원생이 되면서 최저시급을 받아들이게 됐고, 이 계산법은 직장인이 되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하철에 옆사람과 딱 붙어서 서서 다니는, 매일매일 아침을 상상했다. 약 30만 원에 출퇴근 스트레스 감소를 살 수 있다면 사야 할까?

  

전세 대출을 알아보고 전세 가격을 알아봤다. 대출을 1억을 받아도 오천만 원은 더 있어야 반지하가 아닌 원룸을 구할 수 있었다. 3개월쯤 고민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아빠에게 돈이 있냐고 물었다. 애석하게도 살고 계시는 집과, 차를 모두 합쳐야 오천만 원이란다. (의아하시면 지방의 임대주택이나 시골에 사시라!)


전세 구할 돈은 없고, 월세로는 목돈 모으기가 힘들고, 고시원은 살기가 싫다. 어쩔 수 없지. 반전세로 구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는 80% 전세 대출을 받고 신용 대출을 받아 남은 금액을 메꿀 생각이었지만, 직장에 다닌 지 반년도 안된 나에게 가능한 신용 대출 금액은 너무 적었다.


친구들에게 물었다. 전세금은 어떻게 했냐고 물으니 대출과 부모님이 언급됐다. 가끔은 부모님의 도움만으로도 집을 구해 살았고, 누군가는 전세가 아닌 매매이기도 했다.


애인은 냉큼 돈을 빌려준다고 했다. 전문직이거나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가 애인한테 돈 빌리지 말라며 바로 돈을 빌려줬다. 전세 계약을 했다.


나는 너 같은 친구를 두다니 행운이라했고, 친구는 이런 돈을 쉽게 빌려줘도 된다고 생각이 드는 너를 친구로 둔 내가 행운이지하고 답했다. 행운이다.


이제는 모두 옛날 일이 되었다. 애인은 남이 되어도 친구는 남고 보증금이 없어 염려하던 때는 지나가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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