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별 Sep 14. 2023

#2023. 9.14. 목, 고구마줄기.

오늘은 5시 30분에 일어났다.

명상을 하고 드립을 했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봉사 준비를 한다. 농사일을 해낼 자신이 없어서 신청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 스님이 공항 의자에 허리를 길게 눕히고 다리를 쭉 늘어뜨려 잠드시는 모습을 보고 '그래 죽으면 썩을 몸... 아끼면 뭐 하나, 다녀와서 며칠 눕지 뭐,,, '라고 봉사신청을 했다.


날씨가 선선하고 햇볕이 없어서 일하기 좋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감은 고구마줄기 따기였다. 낫을 들고 산밑 밭쪽으로 한참 걸어가야 했다. 가는 길에 알밤이 가시째로 굴러다녔다.


엉방(엉덩이 방석)은 고무줄에 가랑이를 한쪽씩 넣어서 다리 뒤로 보내야 앉는 물건이었다. 한 고랑씩 맡아서 고구마줄기를 잘랐다. 낫은 필요 없었다. 그냥 툭, 툭 꺾으면 됐다. 쌩초보 3명과 농사 조금 아는 1명이 고구마채집을 하고 있는데 프로농사꾼 언니가 등장했다. 낫으로 훑으면 다고 시범을 보이셨다.


초보 2명은 베어온 고구마 줄기잎을 손으로 똑똑 땄다. 한참을 하는데 오셔서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간추려 모아서 낫으로 베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앞에 펼쳐진 산 경치는 기가 막혔다. 카페를 차려도 될 뷰였다. 조용한 산속에서 고구마 이파리를 따게 될 이야...


근데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이래서 엄마가 들일 하러 다니시는구나...


우연히 농사일을 도와주러 가셨던 엄마는 매일 일을 하러 가신다. 나는 엄마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모랑 한 달을 숙식까지 하면서 영양에 고추따러 가실 때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화도 냈다. 속으로 엄마가 미쳤구나... 남부끄럽게 왜 저러냐 생각했다.


나는 농사일은 고통스럽다고 알고 있었다. 친정과 시댁 모두 농사를 짓지 않아서 경험도 없었다. 그게 왜 재미있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었는지 뭐가 씌었는지 심심한 건지 얼마 전 시장에서 사 온 양파가 땡글땡글하니 이뻐 보이는 경험을 했다. 눈이 침침해져서 그런지 모르겠다. 아니면 다른 인격이 들어왔나...


여하튼 농활도 한 번 안 해보고 딸기 따기 체험을 가도 10분을 못하는 내가 고구마줄기를 따고 고추를 따고 화단 풀 뽑기까지 했고 그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알다가도 모를게 사람마음인가 보다.


3시간만 해서 그런가...

매거진의 이전글 #2023. 9.13. 수, 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