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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별 Jan 19. 2024

# 이상한 결심

지금 다니는 요가원은 후굴맛집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원장님은 다른 것도 잘하시지만 후굴을 잘하신다. 지도법도 탁월하시다. 오십 넘은 사람을 바꾸어주다니... 미라클이지...


수요일에는 우르드바를 했다. 골반을 높이 들어서 발을 손 쪽으로 움직여 걸어갔다. 목젖이 벽에 닿았다. 원장님이 소리쳤다. 발뒤꿈치를 들어!!! 나는 착한 아이처럼 뒤꿈치를 들었다. 가슴을 밀라고 했다. 벽으로 밀었다. 그 상태 그대로 발을 내리라고 했다. 발을 천천히 내렸다. 허리가 찌릿찌릿했다. 가슴을 더 벽에 붙이라고 했다. 가슴을 밀려고 했지만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얼굴이 심장보다 아래에 있고 거꾸로 세상을 보면 워가 뭔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가슴이 벽에 붙을락 말락 했다. 머리를 안쪽으로 더 말아야 했다. 한 번 더 하라고 원장님이 소리를 쳤다. 뭔지 모를 힘이 골반 끝에서 시작되어 가슴을 쭉 벽으로 보냈다. 내가 하는 게 아닌 것이 확실했다.


가슴이 벽에 붙는 순간 1,2초 정도 세상이 고요해졌다. 원장님이 잘했다고 말씀 하셨는데 뭘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수련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왔다. 내 걸음이 달라진 걸 느꼈다. 척추가 일자로 쭉 섰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우울이 툭 떨어졌다. 마음과 몸이 그냥 그대로 가뿐했다.


'아... 원래 이렇게 척추가 서있어야 되는구나'


세상이 아름답게 흘러가고 있었고 사람들은 빛났다. 나도 에너지가 흘러넘치고 기쁨이 흘렀다. 들뜬 기분은 아니었다. '내가 이런 걸 하다니...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내가... 내가... 내가...'라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차분해졌다.


정교하고 침착한 마음이 흘렀다. 모든 것이 온전하다는 느낌도 흘러나왔다. 나는 귀찮은 게 많은 사람이다. 적당히 대. 충. 하는 게 익숙하다. 그렇지만 일탈을 하거나 비도덕적인 일을 하는 건 아주 싫어한다. 하지만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정밀한 일이나 지속적인 힘을 써야 하는 일도 싫어한다.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적당히 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다.


집으로 돌아왔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웬. 일. 인. 지. 차분해졌다. 내가 제일 대충 하고 싫어하는 일이 설거지와 청소다. 적당히 해치우고 그릇을 우수수 쌓아 올린다. 한 번도 공들어 설거지 해본 적이 없고 그 일에 마음을 둔 적도 없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일을 하러 갈 생각으로 가득하다(대체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그날은 설거지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릇에 마음이 가서 붙었다. 그러자 그 일은 귀찮은 일이 아닌, 대충 해도 되는 작은 일이 아닌, 그렇다고 우주를 살리는 일도 아니지만 '한 움큼의 시간'으로 다가왔다.


싫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삶의 한 조각이 되었다. 그리고 자꾸만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이상한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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