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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별 Mar 20. 2024

#67 나는 이런 날 네가 힘들다

쑤쉬안후이 <<내 삶을 지키는 바운더리>>

'바운더리'라는 말이 유튜브에서 많이 나온다. 나는 71년생이다. 그 해에는 아이들이 많이 태어났다. 초등 1학년 때는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었고 동네 골목마다 아이들이 넘쳐났다. 집에는 친척들이 자주 왔고 친구집에도 매일 갔다. 너와 나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 71년은 새마을 운동이 시작된 해였다. 우리 또래는 자본주의와 쇼핑의  알게 되었다. 새 책가방을 사고 운동화도 샀고 여성도 대학진학을 많이 했다.

 그런데 결혼 후 삶은 어릴 적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게 어른의 삶이야 할 수 없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시공간으로 이동해야 했다. '동네'라는 공동체는 소멸되었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자주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렀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다. 딱히 누구 이라고 할 수 없었다. 1971년 1인당 GNP 3백 달러에서 2020년 3만 3천 달러 사이에는 넘어야 할 심리적 저항이 많았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소득은 우리 마음도 아주 바쁘게 만들었다.  

 관계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구조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조직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이 하중을 제일 많이 받는 것처럼 상처 입은 자아가 일으키는 문제의 무게는 옆사람이 짊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타인의 무게까지 짊어지고 있는 삶이 제일 곤혹스럽다고 생각된다. 자신의 무게를 감당할 때 어른이라고 한다. 내가 어른이 되었는지, 혹시 옆 사람의 무게를 공연히 혹은 힘겹게 짊어지고 있는지 살펴본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인간이 직면하는 모든 문제는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러한 관계가 현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항상 관계의 문제에 대답하면서 살아간다.







1. 나는 나, 너는 너


p25

 심한 경우 타인의 인생을 자신의 기준대로 재단하여 끊임없이 평가한다. 이렇듯 세상만사를 자신의 어깨 위에 짊어지며 '본인만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완벽주의 콤플렉스이다. 자신의 완전무결함을 드러내기 위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바로잡고야 말겠다는 태도로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고 어디를 고쳐야 하는지 알려주려는 성향이다. --- 이것은 일종의 편집증이다. 이 세계가 실제로 어떠한 모습이든 당신이 머릿속에서 그려낸 모습과 같아야 한다고 극단적으로 집착하는 것이다.

 자신이 우월한 엘리트라고 믿는 사람 중에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므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설계나 관점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태도와 반응은 열등감이 빚어낸 우월 콤플렉스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또는 진실된 내재적 결핍과 결여를 직시하지 못하여 형성된 나르시시즘(narcissism, 자기애, 자기도취)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도미노처럼, 타인이 나를 넘어트렸으면 나는 또 누군가를 넘어트리고, 타인이 나를 착취했으면 나는 또 누군가를 갈취한다. 저항하지 못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쉽게 편익을 취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착취당하면 그는 자신보다 더 약하고 만만한 상대를 골라 강제하고 억압한다. 이것이 보상 작용이다. 어떤 사람에게 억압과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주위의 만만한 상대를 골라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이것이 수많은 배우자와 아이가 화풀이 대상으로 전락하며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유다.


 어려서부터 당신은 다음과 같은 말들을 줄곧 들어오면서도 그 속에 담긴 뜻은 생각해보지 않고 곧이 고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너무 재고 따지지 마'

'지는 게 이기는 야'

'됐어. 더 이상 일을 키우지 않는 게 상책이야.'

'능력 있는 사람이 일을 조금이라도 더 해야지.'

'이타적으로 살아야 해. 그게 좋은 거야'


p44

 이러한 부모는 본질적으로 매우 무능하다. 치기 어리며 충동적이고 무지하지만, 거만과 자만으로 가득 찬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인간관계가 무엇인지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독립적인 개체'라는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생활 속에서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삶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만을 충족하려 든다.

 이러한 사람은 부모의 역할뿐 아니라 형제, 동료, 배우자의 역할에서도 경계선을 완전히 무시하며, 아무런 거리낌 없이 타인을 점유하고 착취하려 든다.

--- 이들은 당신의 '부드러움'을 무시하거나 짓밟으려 들 것이다. 당신의 반응을 살피거나 주시하지 않고 밑 빠진 독을 채우듯 매번 더 많은 요구를 한다. 당신에 대한 이해나 배려 없이 오히려 더 강압적으로 위협을 가한다.


2. 분명히 존재하는 사람들 - 바운더리를 침범당하는 날


 <그는 자신이 요청한 것은 타인이 모두 들어주어야 마땅하고, 세상은 이러한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인생이란, 숙주를 찾아낸 후 마음껏 그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또 끊임없이 요구하면 그만이다. 경계선을 논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얻고자 하는 이익을 해칠 뿐이니 그에게는 조금도 이롭지 않다.>


 <이것은 매우 비이성적인 감정 조정이며 비합리적인 요구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장기적인 죄책감(엄마의 칭찬을 받지 못해 느끼는 실망)과 감정 조정(엄마의 속을 썩이는 것은 못된 아이와 불효자라는 통념)에 시달린다. 이러한 감정적 갈등을 초래한 관계의 응어리를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어머니의 요구와 논리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누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인지 곧바로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점진적 요구가 계속해서 먹히고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부탁부터 시작해서 더 많은 요구를 하기까지,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며 점차 뻔뻔하고 과감하게 요청하는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의 경계를 허무는 능력이 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박한 태도를 보이곤 한다. 그들은 무력함을 무기로 삼거나 '보호 본능'을 자극해 상대가 거부하지 못하도록 충동질한다.

 이렇게 감정에 호소하거나 감정적 유대로 타인을 조종하는 사람들은 점진적인 책임 전가형의 고수인 셈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적잖이 포진되어 있다. 이들은 노련하게 사람들을 조종해서 착취하고 관계를 잠식해 간다. 이익 경쟁이 팽배한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는 이를 부추기고 있다. 먼저 최소한의 비용이나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는 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당신의 자본이나 자산을 먹어치우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들은 타인을 도구로 여기기에, 그들이 어떤 요청을 하면 타인은 그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 버튼을 누르면 작동하는 기계처럼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않고 피로나 소모 또한 없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상대방을 대한다. 상대방을 하나의 '만족 공급 장치'와 같은 존재로 보는 것이다. --- 그들은 오로지 '자기'만 존재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설정한 기준을 위배하면 마음속에 세워진 '완벽한 유토피아'를 해치지 않도록 마땅히 배제되어야 할 존재가 된다.>


 <그는 자신의 잣대로 타인이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규범을 어기지는 않았는지 재단하며, 망치를 들고 다른 사람의 모난 부분을 끊임없이 두드려댄다.

 그는 실망이 커질수록 자신의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기에,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본인이 잘못되었다고 여기는 것들을 해결하려 든다. 비록 그 대상이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3. 나는 미움받을 수 있다


 <진정한 자신이 되려면 당신과 한평생을 함께해야 하는 육체와 정신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은 경계선을 세우고 그것을 잘 유지하여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면서 '무엇이 나의 생각과 감정인지, 선택과 결정인지'를 구별해 나가는 것이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선택과 결정을 경계선 밖에서 잘 막아내어 자신의 기준을 잘 지켜나가야 한다. 이렇게 하면 그 많은 불필요한 걱정과 번뇌를 줄일 수 있다.>


 <개인의 경계선이 없으면 관계의 질서가 무너진다. --- 한 가정 혹은 조직이 타인과 나의 경계선을 무심코 깨버리고 의도적으로 개체성을 모호하게 만들어 상호 의존과 공생에 기대어 생존을 보장받고자 하거나,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아무 기여도 없이 이익을 취한다면 이는 건강한 가정이나 조직이라고 볼 수 없다.

 이성적인 사고 기능이 없는 가정은 그 특성이 대물림된다. 다음 세대뿐 아니라 그다음 세대도 계속해서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타인과 나의 관계나 인생 문제를 사고하고, 감정적인 생존 방식에 기대어 본능적이고 자동화된 방식으로 반응하거나 행동할 것이다. --- 하지만 가정 혹은 조직 구성원이 이를 간파하여 병들어 버린 상호 관계를 깨닫고 이것은 잘못된 것이며 강압과 착취일 이라고 소리친다 해도, 오랫동안 이러한 환경에 동화된 사람들은 오히려 화를 지 못하고 되레 꾸짖을 것이다. 왜 분탕질하며 멀쩡한 규율을 파괴하려 드는 것이냐고, 왜 이리도 사리 분별을 못하고 굳이 문제를 일으키려 하느냐고 말이다.>


p62

 <복잡하게 뒤엉킨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정말 고되고 지난한 여정이다. 과거의 껄끄러웠던 인간관계가 다시 생각나거나 거절당했을 때 느꼈던 부끄러움과 난처함과 같은 잠재의식의 부정적인 감정은 블랙홀과 같아서 자신을 정체 모를 어둠의 소용돌이로 무섭게 빨아들인다.


 '부탁'이 '요구'보다 나으며, '문의'가 '지시'보다 낫고, '존중'이 당연함'보다 좋다.

 당신은 하나의 준칙을 양측의 상호작용에 활용할 수 있다. 그가 진중하게 표현하면 당신도 신중하게 고려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 당신은 비례의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상대가 당신의 부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당신도 성심성의껏 그의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없다.

 자기중심적이고 나르시시즘 성향이 강한 사람에게 맞춰줄 필요 없으며, 자신의 심신 건강과 자원을 공연히 허비할 필요 없다.>


p73

 <당신의 거주공간이 타인에 의해 함부로 점유당하지 않아야 하듯이, 당신의 심리적 공간 또한 그래야 마땅하다.  --- 타인의 공간을 제멋대로 침범하는 사람과는 일정 거리를 확보하고 유지해야 하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마음의 문을 쉽게 열어주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공간을 습관적으로 침범하는 사람은 애초에 이러한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못하며, 당신이 문을 활짝 열어 타인이 마음대로 점유하기를 기다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고 스스로 물러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공간과 영역을 제멋대로 침범하지도 않을 것이다.>


p75


  미움받을 수 있어야 자기를 보호한다.


 우리가 타인과 마찰을 피하고자 하며 타인의 미움을 받지 않는 것만 신경 쓰고 자신의 감정은 전혀 돌보지 않는다면, 내면 아이는 늘 참고 견딜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더 많은 분노를 느끼고 심지어 과도한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분출해냄으로써 외부 환경의 위협과 불합리한 대우에 맞서게 된다.

 완전한 자아, 그리고 성인의 자아는 내면의 감정과 요구에 따라 자신을 보호할 수 있어야 비로소 내재적인 감정의 평온을 찾을 수 있다.


 p79

타인과 적절한  거리를 가늠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침범당하기 쉽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에 대한 존중'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늘 타인의 부당함과 냉대를 참는 사람들은 타인을 침범할 확률도 높다. 자신의 진실된 감정이나 선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타인의 감정과 선택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겠는가?


 인간관계의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들은 "넌 정말 이기적이구나" 혹은 "너무 예민한 것 같네"와 같은 말을 자주 입에 담는다. "넌 정말 이기적이구나"라는 도덕적 문제 제기와 "너무 예민한 것 같네"와 같은 문제 회피 방식으로 복잡한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을 단순화해 버린다. 그리고 타인의 죄책감을 불러일으켜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강제하고자 한다.

 




 경계를 세우는 것이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어렵다. 소득이 급변하는 사이, 도시가 비대해지는 동안 우리는 혼자 마음을 졸이며 그 시간을 따라잡았다. 그 시간이 낳은 불편함이 내 안에도 있다. 내 안은 내가 청소하고 너의 마음은 네가 붙잡도록 하자.

 

  

 우리는 통조림 공장의 주형에 따라 제조된 상품과 유사하여, 사회에 나왔을 때 막연함과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감과 자존감도 결여되어 있다.
 이번 생을 살면서 자신을 완성하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거대한 성취다.


 

 1인당 GNP 3만 불의 화려한 우리, 외부에서는 천국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괴롭다고 아우성이다. 나도 그렇다. 내 머릿속에서 아직도 소득 3백불의 인간관계론이 펼쳐지는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미워지는 그이와 미워하는 내 모습이 지나치게 빠르게 펼쳐진 경제 성장의 그림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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