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3일 밤에 뜬금없는 계엄선포라는 게 발표됐다.
그 선엄문을 읽다가 목구멍에서 턱 걸린 문장이 있다.
'의사들은.... 복귀해라... 복귀하지 않으면 처단한다'
라는 대목이었다. '처단'이라니... 이 무슨 조악한 문장인가...
인류의 역사가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졌지만 이렇게 졸렬함이 드러나는 글을 타자에게 내보이면서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자리는 어디일까... 밤새 이게 꿈일까? 가상현실일까? 혹시 가짜 뉴스일까라는 생각들이 흘렀다. 그날은 억지로 잠을 청했다. 나는 남편이 술을 마시고 사건을 저지르지 않을까라는 불안에 떨면서 밤을 지새운 적이 많았다. 그 밤은 공포와 불안, 분노를 몸으로 견디는 시간들이었다. 그 경험은 세포 단위로 기억되어 지울 수 없다.
그래서 내게 밤은 꼭 잠을 자야 되는 시간이다.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었다. 윤o씨가 내란을 일으킨 그날부터 2주 동안은 잠을 잤다. 그런데 국회에서 탄핵 가결되기 전날 12월 13일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
내 몸은 의식으로는 통제하기 힘든 상태였다. 불안이 뜨고 편도체가 작동하기 시작한 거다. 이 불안과 공포를 어떻게 모른 척, 아무것도 아닌 척 속일 수 있나... 그럴 수는 없다. 몸은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머릿속이 뿌옇게 흐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분노가 심장 쪽 왼쪽 가슴부위를 압박했다.
유튜브에서는 여러 가지 정황들을 알려주고 설명하고 해석해 주었다. 듣고 싶지 않았다. 회피하고 싶었다. 어떻게든 어서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모른 척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아니라는 동시에 목소리도 들려왔다. 무겁다고, 무섭다고, 당장 내 일이 아니라고, 회피한 일들은 돌고 돌아서 더 힘든 일로 돌아왔다. 혹여 돌아오지 않았다고 해도 마음에서 일어나는 자책과 스스로에 대한 환멸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는 그녀는 왜 이렇게 졸렬하고 어리석은가...
어쩌다가 저렇게 망가져서 자신과 타인들 괴롭히는가...
잠이 오지 않는다는 건 이미 자율신경 기능이 떨어졌다는 말이다.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자율신경계는 뇌에서 작동하는데 소화기, 순환기, 심박수, 배설가능이 원활하도록 조율해준다고 한다.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로 나누는데 서로 정반대작용을 하면서 몸을 유지하려고 한다. 교감신경은 긴장이나 공포감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위험한 상황에서 각성을 최대치로 이끌어낸다. 호랑이가 나타나면 있는 최대치 근력을 써서 도망가게 하는 힘을 쓰게 한다.
3일에서 13일까지는 버텼지만 그날 이후 자율신경은 항상성을 잃었다. 잠이 오지 않았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자주 배가 아팠고 혈당스파크가 일어나는 단것들이 먹고 싶어졌다.
조선 후기는 혼란한 상황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리더들은 지도력을 상실해가고 있었다. 국내외 정세에 어두웠고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원인이 겹쳐서 결국 1910년 한일 합방이 이루어졌다. 일본은 치밀한 식민지 정책을 사용했다. 10년 단위로 점차적으로 지배의 강도를 높여서 한반도의 숨통을 조였고 결국 한반도를 교두보로 삼아 청을 공격하고 미국과 싸우는 대동아전쟁을 일으켰다.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수탈해 간 자원과 인적 손실은 치명적이었다. 1945년 해방되었지만 우리 손으로 이루지 못했다. 미국이 하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려 일본을 굴복시켰기 때문이다. 그 틈에 미국과 소련이 잽싸게 한반도를 점령하려고 했다. 그들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동원하고 무력을 사용해서 우리를 두 동강 내었다. 그 긴장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이어졌다. 전쟁은 상처 위에 다시 깊은 칼집을 내었다.
미국과 소련에게 우리는 식민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 혼란 속에서 우리는 친일 세력에 대한 처벌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 세력들은 생존에 능한 그룹이다. 그들은 혼란한 틈을 타서 정계와 경찰조직, 군대조직을 다시 장악했다. 그들이 해방 이후 우리 정치사에 다시 리더로 등장하고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우리는 조선후기부터 한국전쟁 이후 근현대사에 무지하다. 왜 그랬을까? 감추고 싶은 것들이 많은 그들은 역사가 두려웠을 것이다. 우리는 취약한 존재이다. 탐욕에도 끄달리는 존재이다. 그들이 무섭고 두렵다. 그들은 대중을 잘 다룬다. 선동에도 능하다.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들, 그 그룹들(국민의 힘으로 대표되는)은 정의와 용기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언제 그들이 우리를 지켜준 적이 있는가?
우리 안에 있는 울분과 불안은 우리 부모님과 조부모님에게서 시작되어 아직 미해결 된 채 우리 안에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풍요롭고 많은 과제들을 해결했다. 눈물을 딛고 부지런함과 선함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마지막 산을 넘어야 한다. 두렵고 무서워서, 혹은 불편해서 차마 보아내기 힘들었던 그 시간들을 살펴야한다.
박완서 선생님은 소설에서 말했다. 이승만 정부는 대전으로 피난가고 한강다리는 끊어졌다고 한다. 남아있던 서울 시민들은 혹독한 시간을 견뎌야 했다.
언제나 우리가, 시민들이 스스로 나라를 지키고 우리를 지켰다. 우리에겐 갈 곳이 없으니까. 가족과 이웃들과 이곳에서 살아야 하니까...
이제는 그만하면 좋겠다.
이제,
역사와 시민앞에서 파면과 처벌을 달게 받기를 바란다.
그대들의 시간은 끝이 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