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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붙잡게 된다면

불안하다는 뜻입니다.

by 자기 고용자

드디어 제품 사입을 위해 제조사에 연락했다. 가능하면 위탁을 먼저 하고 싶었는데, 위탁은 진행하고 있지 않아 사입하기로 했다. 이익률 면에서는 사입이 크고, 사입보다는 브랜드가 크다는 걸 알고 있지만 사입은 재고를 껴안고 가야 하는 점에서 왠지 모를 불안이 계속 들었다.


회사 다닐 때는 거래처에 전화하는 게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막상 '내 일'을 위해 제조사에 연락하려니 한없이 작아지고 막막하기만 해서 며칠을 고민하고 애써 다른 핑계들을 찾으며 연락하는 걸 미뤄왔다. 어제는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일도 못하는데 무슨 전화야? 하루만 쉬어야지.' 했다. 오늘은 '공유오피스의 폰부스는 다 찼고, 라운지는 독서실처럼 조용해서 전화를 못하겠네? 아이쿠야.' 하며 괜히 아쉬운 척했다.


제조사에 전화하는 걸 피하고자 어떻게든 위탁판매하는 도매사이트를 찾으려고 100개 도매사이트를 직접 다 훑어봤다. 몇 군데에서 비슷한 제품을 팔지만 내가 염두한 브랜드에 비하면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그리고 위탁판매로 괜찮을 것 같은 다른 카테고리의 제품을 발견했다면서 그쪽에서 열심히 알짱알짱 댔다. 어떻게든 전화를 피하려고 갖가지 핑계를 대며 열심히 하는 척하는 나 자신이 조금은 웃기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안쓰럽기도 했다.


'이제는 정말 혼자구나.'


내가 잘못되어도 나 대신 책임져 줄 상사도 없고, 나를 보호해 줄 회사도 없다. 회사가 나의 세상에서 그렇게 큰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는 미처 몰랐다.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지, 나를 지켜주는 곳인 줄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현재 스마트스토어에도 어떤 상품도 등록되지 않은 상태라 나를 소개하는 게 이렇게 난감할 줄이야. 또 하나 깨달았다. 그리고 통화할 때 명함 요청하는 말을 몇 번 들으니, '명함은 필요 없을 줄 알았는데... 망고보드로 얼른 대충이라도 만들어놔야겠다.' 싶었다.


하다 보니 준비할 일이 계속 생긴다.




막상 판매처와 전화해 보니 그리 어렵지 않구나를 또 깨달았다. 30대 초반까지는 업무 중 전화할 일이 생길까 봐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었던 기억도 난다. 30대 중반이 넘어서는 전화로 빨리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든 전화로 처리하려고 상대가 받을 때까지 전화했었던 것도 기억난다.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나에게 변화는 늘 있는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변화의 격차가 큰 점은 인정한다.


'30대 초반까지의 나'와, '30대 중반을 넘어섰을 때의 나'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앎'이었던 것 같다. 30대 초반까지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늘 막막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처음이니까 자신이 없었다. 고객문의를 받고 처리할 때 지혜가 부족해서 어벙벙~ 거렸을 때가 많았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제발 어려운 일을 하면서 동기부여하고 싶을 정도로 모든 일이 쉬웠다. 덕분에 늘 어깨에 뽕이 가득 차 있었다.


지금은. 30대 후반이지만 다시 30대 초반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모든 것이 다 처음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만약 지금 회사에서 이런 일을 했다면 아무렇지 않게 전화 돌리며 업체 찾으려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어떻게든 빠르게 적절한 업체를 찾으려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쉬웠던 일이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일이 되어 숨고 피하고 도망가고 있으니...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울타리'다.


누군가 나를 지켜줄 것인가, 아니면 내가 나 자신을 지킬 것인가. 과연 지킬 수는 있을까? 지금은 바람만 불어도 가슴 움츠리며 놀라곤 하는데, 이렇게 작아진 내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까?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막상 해보면 별일 아니다.'라는 것이다.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우리 모두 처음엔 다 몰랐다. 하다 보니 알게 된 것이고, 실수하면서 배우는 것이고, 넘어져서 일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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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함 마음에 어떤 한 가지에 집중하기보다 '어떤 것들이든 걸리기만 해라.'는 식으로 자꾸 문어발을 펼치게 된다. 온라인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이것저것 펼치고 뒤집고 다시 접고를 반복하니 머리가 아파서 잠시 쉬고 있을 때 작은 음성이 들렸다.


'아, 할 것 많다며 왜 이러고 있었지? 한 가지 아이템만 해도 할 일이 많은데, 그렇게 급하면 미리 준비해도 되잖아?'


그래, 한 가지에 집중하자. 모든 것을 다 잡을 순 없다. 다 잡을 수 있다 하더라도 모두 잘 되리란 보장도 없지 않은가. 주말에는 가라로 명함도 만들고, 상세페이지도 구성해 보자. 어떻게 팔지, 마케팅할지 전략도 좀 짜보자. 한 가지 분명한 아이템을 정했으니 일단 집중하자.


대신, 아마존으로 수출하는 건 동시에 하고 싶다. 아마존에는 일단 물건 보내 놓으면 특별히 관리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준비할 건 또 엄청 많겠지만!) 이상하게 자꾸 지금 아마존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의 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이건 지금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또다시 얻어걸려라 마인드인 건가?)




처음에는 사입가가 괜찮은 가격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손수 포장과 배송을 해야 하니 포장비와 배송비 합치면 남는 게 그닥 없을 것 같다. 필요에 따라 광고도 해야 한다면 더 마이너스겠고... 거래량 늘려나가면 나중에 더 DC 해주려나 슬쩍 기대도 해본다.


담당자분이 오늘 휴가인데도 연락해 주셨던 거라, 다음 주 월요일에 발주 안내와 견적서 주시기로 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주말 동안 최대한 할 수 있는 일들 빠르게 처리하고, 다음 주 월요일을 맞이해야지!


요즘 나는 자꾸만 '도와주세요.'라고 혼잣말을 한다. 도와달라고 해도 아무도 없는데 자꾸 그 말이 나온다. 이 말을 어떤 형태로 바꾸면 좀 더 나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 고민해 보아야겠다.


나는 할 수 있다? 해낼 것이다?

음. 적절한 것을 찾아봐야겠다. 정말 힘이 나고 내가 다시 커질 수 있는 그 무언가로.


매일의 습관을 쌓아가는 것조차 없었다면 지금 나는 더 작아져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2년 전부터 매일 나에게 물을 주는 습관을 연습해 온 게 다행히 도움이 되는 듯하다. 그때보다 지금 2배로 더 나를 위한 힘들을 키워나가야겠다. 누가 뭐라 하든, 나 스스로가 될 수 있게!


노홍철처럼, 밑도 끝도 없이 나를 사랑하고 찬양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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