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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유혹

가끔씩 찾아와요

by 자기 고용자

오랜만에 글을 쓴다. 5일 동안 아르바이트 하기로 되었던 게 하루 연장되어서 지난주 금요일까지 일했다. 오전에 그림 수업 갔다가 바로 일하기 시작해서 저녁에 부랴부랴 약속 장소로 향했다. 생일이었는데, 하루를 쉴 틈 없이 가득 채워 보냈다. 생일에 바쁘니까 한편으론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은 유혹에 살짝 흔들렸다. 2일 차까지 그야말로 복사+붙여넣기하는 노가다를 하였는데, 이전에 작업했던 사람들에 비해 속도가 월등히 빨랐던 것 같다. 그다음 작업은 말레이시아 진출을 위한 시장조사를 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일을 맡긴 실무자들 말로는 이번 주에 대표님이 출장 가기 전에 시장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알고자 시키신 일이지만, 본인들이 다른 나라 시장조사 했을 때보다 좀 더 빡세게 해야 할 것이라 했다. 말레이시아 시장에 대해 근본부터 파고들고 있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작업한 곳까지 일단 보내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피드백을 받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시장에 대한 가능성을 살피려고 시장규모와 현황에 대해서 알고 싶어지는 줄 알았는데, 거의 시장 진입을 어느 정도 염두하고 실제 시장이 돌아가는 흐름에 대해 알고 싶으셨던 것 같다. 물론 나도 여기까지 조사할 예정이긴 했지만 시장 가능성은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아무쪼록 대표님께서 알고 싶어 하시는 내용을 중심으로 다시 조사하기 시작했다.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또 시키지 않은 일까지 하고 있었다.


얼추 끝낸 시장조사 자료를 넘겼는데, 대표님이 너무 좋아하셨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가장 최신 버전의 이력서를 보내달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알바비 받기 위해서도 이력서가 필요한가?' 싶었다. 이야기해 보니 대표님께서 요청하신 것이란다.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이게 뭐라고 나를 이렇게까지 좋게 봐주신다고?' 감사하기도 했고, 약간은 부담스럽기도 했다.


아르바이트 온 사람에게 시장조사 시켜놓고 갑자기 주말에 IR자료로 사용해야 하니, 출처를 모두 확인해서 신뢰성 있는 데이터인지 봐달라고 한다. IR자료로 활용할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접근도 다르게 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을 아르바이트하러 온 사람에게 맡길 것도 아닌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음. 똑똑한 사람들이 왜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 걸까 살짝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불길한 감정도 올라왔다. 대략적인 구조도 잡지 않고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P처럼 일하는 조직'이란 걸 알고서도 또다시 걸어 들어가는 건, 그땐 정말 내 잘못인 거겠지?


사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지난 화요일에 엄청난 금액의 강의를 신청했던 게 가장 큰 요인이다. 이제 막 내가 갈 길을 정했는데, 며칠도 안되어 잡오퍼 받는다고 휘리릭 따라간다면 나의 의지는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좀 더 명확한 길이 무엇인지 지금 돌아보아도 헷갈린다. 당장 수입이 발생하지만 답답함의 연속인 날들을 보낼 일과 당장 수입이 없더라도 셀렘으로 보낼 날들 중 어떤 길이 나에게 더 유익이란 말인가.


오퍼를 받자마자 느꼈던 것은, 내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이었다. 그리고 이번 주 이렇게 일했던 것처럼 일을 잘 해내면 '내'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효용성 좋은 게 아닐까 싶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가슴 구석에 1mm 정도 아쉬움은 남아 있지만, 잘한 선택인 것 같다. 이제는 내 에너지와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써야지. 내 브랜드를 만드는 일에. 내 사업을 확장하는 일에. 내가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일에 말이다.


아무것도 행한 것이 없고 보이지 않는 지금이란 현실과 시간을 지나다 보면 언젠가 보이겠지. 정말 이렇게 무모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정말이지, 내년이 너무 기대된다.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살아내자.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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