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거쳐야만 지날 수 있는 길

by 자기 고용자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한다. 매번 '이 정신없음과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은 뭐지?'를 느낄 때마다 그 근원적인 감정은 '불안'이었다. 무엇으로 인한 불안이냐 하면, 그건 바로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


어쩌다 스치는 순간에 그 불안을 직면하고 나면 곧장 나 자신을 다시 찾으러 간다. 지금 이 순간처럼 말이다.


매달 유화 수업을 위해 수강료를 지급한다. 25년에는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그림 그리기를 쉴까 하다가 한번 쉬면 그 쉼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고 그동안 조금씩 올라왔던 그림 실력도 다시 잃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꿈꿔온 10년 후의 내 모습과 멀어질까 봐 두려웠기도 했다. 그래서 수강료를 지급하고 1-2주는 쉬다가 그다음 달에 다시 수강료를 지급하면서 간간히 수업을 이어왔다.


몇 주전 연말을 보내면서 또다시 수강료를 내야 할 때가 왔었는데 1-2주를 또 쉬게 되었다. 오늘 오랜만에 그림 그리러 갔는데, 몇 주간 왜 이리 마음이 붕 떠있지 했던 이유를 마주하게 되었다.


'또 나를 잃어가고 있었구나.'


그림 그리면서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너무 좋았는데, 지난 몇 주간 바쁘다면서 놓고 있었던 그리고 작년에 종종 놓치고 있었던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오늘 꼭 먼저 가져야겠다 싶었다. 사실 오늘도 할 일이 가득 쌓여 있다. 상세페이지 나머지 작업도 해서 주말엔 꼭 업로드해야지 했었고, 유튜브도 주말엔 원고 써서 촬영하고 편집해서 월요일 오후에는 업로드해야 했었고, 이 일들을 끝내야 부가세 신고도 맘 놓고 할 수 있는데... 싶었다.


요 며칠은 할 일이 너무 많다 보니 그 사실에 압도되어 무엇하나 집중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나'를 잃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정말... 왜 이럴까?


이번 주 상담 갔을 때, 내가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되어 이해할 수는 있지만 봐도 봐도 나는 특이하다. 나의 행동 패턴과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어떤 원리로 일어나는지는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런 모습 그대로 수용하는 건 또 다른 힘이 필요한 것 같다.


TCI 기질성격 검사에 따르면 새로운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도전하고 싶은 열정이 백분위 점수로 90 이상이 나왔는데, 안전에 대한 추구, 위험회피는 100점이 나왔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게 많고 도전하고 싶은데 위험한 건 피하고 싶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적갈등이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자동차로 치면 F1 레이싱카인데 웃긴 건 에너지는 또 없단다. ㅎㅎㅎ 한번 슝 달리고 나면 무조건 쉬어줘야 하는 그런 패턴인가. 이 부분은 기질로 좋고 나쁨이 없이 나의 모양이 그렇게 생겨먹은 거라는데, 지난 시간들에서 내가 왜 그렇게 매일 혼란 속에 살았는지, 그리고 내가 했던 선택들이 돌아보면 하나같이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었는지 알 수 있는 정보였다.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친밀도를 깊이 추구하는 면은 강한데 낯선 사람은 또 힘들단다. 그러니 한 사람에게 폭 빠지면 의존하는 성향이 훅 나오곤 했던 것 같다. 레이싱카가 들이대니 상대는 얼마나 숨이 막혔을까. 그게 만약 나와 반대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이미 불에 타고 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엔 성격적인 면에서, 나에 대한 수용이 백분위 점수로 1이 나왔다. 그런데 타인을 수용하는 점수는 50 이상이다. 그야말로 자신에겐 엄격하고, 타인에겐 너그러운 사람이다. 상담 선생님께서 자신보다 타인을 수용하는데 50배 이상의 에너지를 쓰는데 힘들지 않을 수가 없었을 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세상을 이해하는 점수는 100점이라고 했다.


'나 자신은 없는 사람.'

'나에게 자신이 없는 사람.'


실제로 이제까지 나의 선택들은 좌충우돌하면서 결론적으론 나에 의한 것일 수 있지만 그 알맹이를 까보면 진짜 내가 좋아해서라기 보단 '좋아 보이는 것들'을 선택했고, 선택으로 인해 '내가 좀 더 사랑받을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선택해 왔다. 그리고 성인이 된 한참 후에도 내가 원치 않아도 반드시 해야만 했던 타협불가한 선택들도 당연히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안 그랬도 됐었던...)


그런 내가 삶 속에서 나를 조금이라도 잃을 것 같으면 처음에는 작게, 그리고 나중에는 점점 더 크게 사이렌을 울려댄다. '나 좀 봐달라고.'


그리고 다행인지 아닌지 모를 것 중 하나는, 연인관계에서도 헤어지고 나면 매번 '나는 진정 호구인가'싶을 정도로 상대에게 맞춰주곤 했는데, 매번 헤어지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더 이상 나를 잃을 수 없어서였다. 특히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지지해주지 못하는 상대에겐 크게 실망하고 마음을 닫게 되었었다. (물론, 이번에는 제대로 가스라이팅을 당하다가 더 이상 내가 맞춰준다고 될 문제가 아니구나를 깨달아 헤어졌지만!)




상세페이지 디자인... 이제는 정말 완성해서 올려야 하는데... 목표는 1월에 100개 생산한 걸 다 판매하고 구정에 맞춰 새로운 선물 아이템을 기획하는 것이었는데 웬걸. 아직도 상세페이지 디자인하고 있다니. 이번 주말에는 정말 다 해야지 했는데, 오늘내일은 유튜브 작업해야 하는구나를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생각났다.


스케쥴링을 할 때는 또 엄청 열심히 하다가 급한 마음이 올라오면 다 놓고 1가지에만 매달려서 결국 전체 흐름이 깨진다. 그러면서 마음은 콩밭에 가있어서 해야 할 일마저 놓치게 되고.


나도 잘 모르겠다. 내 안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수많은 질문과 목소리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정리하며 나아가야 할지. 상담하면서 선생님께 나의 교육철학에 대해 말씀드렸다. 만약에 아기를 키우게 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끊임없이 질문해 주는 것'이라고. 오랫동안 그 생각을 해왔다고.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각 옵션에 따른 장/단점을 설명해 주고 결과에 따른 이익과 손실 등을 설명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한다면 선택한 이유에 대해 물어봐주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게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설령 그게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그 당시엔 그게 너에게 필요했나 보다고 괜찮다고 그 모든게 섞인게 인생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선생님께선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런 교육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니 좀 놀라신 것 같았다. 어떻게 어린 나이 때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그걸 본인도 받고 싶어 했을지 느껴진다고.


그렇게 '어린 나'를 마주하며 나도 울컥거리곤 했다. 상담을 하면서 '나'를 수용할 수 있는 객관적인 데이터들을 얻을 수 있어 좋다. 객관적인 자료가 아니었다면 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끊임없이 부정하면서 살았을 테니까 말이다. 내 존재를 '오답'으로 여겼으니까.


요 며칠 일이 잡히지 않았던 이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지금의 시간. 이런 시간을 가져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다른 사람들은 해야 할 일들은 잘 처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몇 달째 같은 자리다. 내 마음이 해결되지 않으면 나아갈 수가 없다. 정말... 나만 이런 걸까?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했었다. 만약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다면 나의 답이 '정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내 안의 세계. 언제 즘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17년지기 베프를 통해 사기를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