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출판-서점 네트워크 속에서 책문화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본 토론자는 1987년에 창간된 출판전문지 <출판저널>을 발행하고 있다. 2017년 9월호로 창간 30주년 통권 500호를 넘겼다. 2006년부터 수석기자로 시작해서 편집장을 거쳐 지금은 발행인을 맡고 있다. 1987년은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시작된 시점이기도 하지만 출판산업적인 측면에서는 출판의 자율화가 이루어지면서 출판의 공급량이 늘어났고 1990년대가 되면서 본격적인 대중 독서로 이어졌다. 지난 30년 동안 출판산업은 생산, 즉 책을 시장에 내놓기 바빴다. 따라서 <출판저널> 등 매체를 통하여 독자들에게 어떤 책이 나왔는지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출판시장과 독서환경이 변화되었다. 출판물의 공급과잉 시대가 도래하였고 스마트폰 등의 생활화로 독서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토론자는 <출판저널> 창간 30주년을 앞두고 ‘출판’과 ‘독자’를 빈 종이에 써놓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앞으로는 어디에 방점을 찍어야 할까? 지난 30년간 책을 발행하는 생산자(공급자) 관점에서 출판과 독서를 바라보았다면 앞으로는 책을 읽는 수요자(소비자, 독자) 관점에서 출판을 바라봐야하다는 관점으로 이동하게 됐다.
이러한 관점으로 탄생한 매체가 독서매거진 <독서경영>이다. 지난 30년간 <출판저널>을 통하여 출판산업적인 관점에서 출판과 독서를 이야기했다면, 앞으로는 <독서경영>을 통하여 독서와 출판을 이야기하고 독자들과 공감하고 싶었다.
이러한 ‘출판’에서 ‘독자’로 관점의 이동은 출판생태계에서 독서생태계로,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수렴하는 ‘책문화생태계’라는 키워드로 접근하게 되었고, 결국 ‘책’을 매개로 출판과 독서가 건강한 생태계 속에서 선순환하고 시민들은 지역에서의 문화공공 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다.
이를 위한 몇 가지 요소를 제시하고자 한다.
1. ‘중앙’에서 ‘지역’으로, 나아가 글로컬라이제이션
그동안 독서문화 정책이 서울 중심, 수도권 중심으로 수립되고 추진되었다면 최근 ‘지역’ 중심으로 독서문화 정책이 수립되고 추진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예로 대한민국 독서대전이 지역의 독서문화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7년 대한민국 독서대전을 개최했던 전주시뿐만 아니라 올해 독서대전이 개최될 김해시, 인천시, 군포시 등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구 단위까지 독서문화의 주체가 세분화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세운 정부의 독서정책 영향도 있겠지만, 지역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살고 있는 시민들을 ‘문화’라는 틀 안으로 모이게 만든 힘은 지역 시민들의 자발적인 문화적 복지를 누리고자 하는 욕구가 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부터 지방분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역사회, 지역문화에 대한 정책수립과 추진이 필요해졌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올해부터 국내 최초로 ‘제주지역출판진흥조례’를 제정하여 제주의 지역출판을 진흥시키고 있다.
전주시도 2017년에 대한민국 독서대전을 개최한 도시로서 ‘책문화 도시’를 선포하고 ‘책문화진흥조례’를 만들어 정책을 실현시키면 어떨까 한다. 우리나라에는 ‘책의 도시’는 많이 있지만 ‘책문화 도시’라고 규정한 도시는 아직 없다. 전주는 한지, 완판본 등 이미 책문화 도시로서 충분한 가치들이 있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라는 관련 공공기관도 있지 않은가.
네덜란드는 매년 12월이면 데이븐떠 도시에서 찰스 디킨스 축제가 열린다. 《크리스마스 캐럴》 《두 도시 이야기》 등을 쓴 찰스 디킨스는 셰익스피어와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가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인 디킨스 축제가 네덜란드 데이븐떠라는 작은 도시에서 열린다. 1990년부터 시작해 온 디킨스 축제는 데이븐떠 도시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모이는 세계적인 축제가 되었다. 1000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디킨스 소설 속 인물로 분장하고 도시의 거리로 나와 함께 축제를 만들고 즐긴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소설이다.
전주는 이미 세계적인 관광도시, 문화도시로서 도시브랜드가 알려져 있는데, 전주시의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전략 측면에서 본다면, 전주시가 담고 있는 한국 고유의 전통문화와 함께 세계적인 책문화 도시로서 ‘전주’를 떠올리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한다. 지방분권 정책으로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지역에 머물지 않고 책의 도시, 독서문화 도시, 출판도시를 아우르는 ‘책문화 도시’로서 전주시의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이 필요하다.
2. ‘책-시민-문화’의 연결 공간으로서의 도서관
최근 콘텐츠 산업 키워드는 ‘연결성(Connectivity)’이다. 어쩌면 도서관의 핵심 전략도 연결성에 있다고 본다. 예전처럼 시험공부만 하는 도서관이 아니기 때문에 문화와 일상을 즐기는 도서관으로 변화되어야 더 많은 시민들과 연결 가능성이 높아진다.
도서관은 ‘책-시민-문화’를 어떻게 잘 연결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책만 읽기 위해서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도서관의 ‘문화’를 누리고 즐기도록 만들어야 한다. 흔히 독서환경이 좋아야 책도 많이 읽는다고 말한다. 즉 책이 있는 곳에서 독서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요즘처럼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잠들고 깨는 현대인들은 책보다 스마트폰 환경이 익숙하기에 독서율이 점점 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독서문화를 위한 공간으로서 도서관의 기능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연결성을 생각할 때 우리는 책과 도서관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생각을 뒤집으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도서관을 일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지었다. 그러나 이젠 시민 속으로 도서관이 찾아가야 한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의 공공도서관인 렐리스타트 도서관은 렐리스타트역에서 내리자마자 도서관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 안에는 시청사가 있고 빵집이 있고 다양한 상점이 있다. 계단으로 올라가면 2층부터 도서관이다. 즉 멀티쇼핑센터 안에 도서관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관공서 일도 보고 빵도 사고 쇼핑도 하면서 도서관에서 잡지도 보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도서관의 문화를 즐긴다. 상권의 중심지와 출발지에 도서관이 위치해 있다.
그렇다고 도서관을 옮길 수 없겠지만 도서관에 도서관의 기능만 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게 만드는 기능 몇 가지를 ‘연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행정서비스와 도서관의 역할을 연결한다던지, 도서관에 쇼핑 개념을 넣는다면 어떨까. 역으로 행정기관에 도서관 기능을 더해도 좋다.
3. ‘도서관-출판-서점’의 네트워크에 의한 지역독서공동체
“도서관은 현민에게 ‘있는’ 정보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보를 모아서 현민들에게 제대로 제공해 주는 것이다.” - 일본 돗토리현립도서관 사이토우 아키히코 전 관장
일본의 돗토리현은 일본에서 가장 적은 인구가 사는 현이다. 56만 5천233명으로 제주도보다 적다. 그러한 놀라운 것은 일본 최초로 지역도서전을 개최하고 2017년에 30주년을 맞이했다. 또한 돗토리에서 그 유명한 ‘책의 학교’가 있다. 이렇게 가장 작은 현인데 1년 도서구입비가 1억엔으로 일본에서 전국 1위의 도서구입비를 자랑한다. 1억엔 도서구입비 중 90%를 현의 지역서점에서 도서를 구입한다. 그야말로 지역에서 도서관-출판-서점의 상생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책문화를 구성하는 주요 주체인 ‘도서관-출판-서점’의 네트워크를 통하여 지역 내에서 콘텐츠가 생산되고 유통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지역바깥으로 확장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4. 리더의 독서리더십
작은 조직이든 큰 조직이든 리더의 독서리더십은 그 조직이 책 읽는 문화로 꾸준히 성장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리더십 못지않게 중요한 리더십이 펠로우십이다. 리더 혼자만 읽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 함께 읽고 토론하고 비전을 공유하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앞에서 네덜란드의 사례를 이야기 했는데 문화를 만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시민들이다. 정책을 통해서 시민들이 참여하여 문화를 만들고 즐길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 줘야 한다.
책문화 도시, 전주를 기대해 본다.
* 본 글은, 2018년 2월 23일 오후2시, 전주시청 강당에서 전주시가 주최한 <도서관·독서문화 정책 포럼>에서 발표한 토론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