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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닷빛 Dec 22. 2021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

겨울이 오면 기계적으로 징글벨의 가사를 외워 불렀지만, 그런 상쾌한 기분을 실제로 느낀 건 2020년 2월이 처음이었다. (성당 사람들과 캠프를 갔는데, 코로나 얘기가 슬슬 나올 때였지만 전혀 실감하지 못할 때였는데, 그 뒤로 한 달만에 대대적인 코로나 락다운이 시작됐다.)  


썰매를 타러 간 게 처음은 아니었다. 어릴 적 겨울에 아빠 친구분 가족들과 썰매를 타자고 여행을 갔었다. 5학년인가 6학년 때였다. 당시 주말 아침에 '알프스의 메아리'라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각색한 만화를 방송했는데 그 만화를 거기에 가서도 열심히 봤던 게 생각난다. 결국 타려던 눈썰매는 타지 못 했다. 전날 술을 많이 먹고 뻗은 아빠들 때문에 늑장을 부리다 결국 썰매장에는 못 가고 그냥 널빤지 같은 걸로 어떻게든 해보려다가 잘 못 탔던 걸로 기억한다. 그 뒤로도 어찌 된 일인지 영 겨울 스포츠와는 인연이 없었다.


스키는 딱 한 번 타봤다. 고3 대입 시험이 끝나고였다. 스키를 좋아했던 친구랑 그 친구 오빠, 그 오빠의 친구랑 스키장에 갔었다. 사실 스키 자체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서는 일어나야 한다는 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기계를 돌려 돌아온 굴욕만 깊게 남아 있다. 애써 생각해 보니 츄러스를 그때 처음 먹어본 것 같기도 하고. 친구와 오빠와 그 친구가 엄청 놀려댔던 것도 기억난다. 힘이 세다는 자부심이 제법 강했던 친구 오빠가 나름 열심히 가르쳐 줬던 거 같기도 하고.


남편은 다른 운동은 다 시큰둥해 하지만 스키에만은 눈을 반짝인다. 그런 남편과 연애를 할 때도, 결혼을 하고 나서도 스키는 한 번도 타지 못 했다. 그렇게 고3 때의 스키가 유일한 (아픈) 기억이다. 대학 때는 과 생활과 주일학교 교사를 하느라 바빴고, 그 뒤로는 방송국 시험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막상 회사를 다닐 때는 매일의 생방을 밀어 두고 다른 곳으로 길게 여행은 갔어도 정작 한 번도 스키를 타러 가지는 못 했다. 휴직하고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에는 숙제와 시험공부를 하느라 바빴고, 그 뒤로 남편이 유학을 오고 나서는 눈이 귀하기도 하고 시간과 여유가 다 없어서 생각도 못 했다.


사실 바쁘다는 건 다 핑계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누구나 바쁘므로. 한 번뿐인 인생, 지금 누릴 수 있는 건 누려야 한다는 YOLO(You live life only once)가 떠오른다. 반면 한국인의 DNA에 뼛속 깊이 박혀 있는 것만 같은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에서의 교훈 또한 머릿속에 펼쳐진다. 그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면서 사는 게 인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마음이 고요해지는 겨울 풍경. 남편이 찍은 사진이 너무 예뻐 가져왔다.


우리가 묵었던 캐빈


눈을 만끽할 수 있는 레이크 타호라는 곳에 다른 가족들과 3박 4일 다녀왔다. 그곳에 가 있는 동안 눈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이미 무릎까지 푹푹 들어갈 정도로 눈이 쌓여 있었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다 신이 났다. 같이 갔던 친구들 덕인지 만 5세 우리 딸내미도 마음껏 눈을 즐겼다. 그래도 썰매를 혼자 타지는 못 했다. 어쩌면 만 5세 우리 딸내미보다도 내가 더 신났는지도 모르겠다.


안 신나 보이지만, 신났다.



다른 가족도 있었고, 스키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하루 정도의 휴가를 주고 혼자 스키를 만끽하라고 오라고 했는데,  결국 예약 타이밍을 놓쳐서 남편은 이번에도 스키를 타러 가지 못 했다. 못내 아쉬워하는 걸 보니 남편은 조만간 스키를 타러 갈 것 같다. 한 번은 혼자 보내줘야지. 그래도 다음에는 딸내미랑 나도 스키를 배워보겠다고 해봐야겠다. 뼈가 부러지면 슬쩍 곤란한 나이가 되긴 했지만,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배워야 될 테니까. 이제 리프트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걸 우리 S양에게도 꼭 알려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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