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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닷빛 Jan 02. 2022

새해가 밝았다

결심보다는 루틴을.


새해가 밝았다.

모든 게 짜잔! 하고 바뀌길 기대한 건 아니다.


2022년 1월 1일. 그저 임의로 365일을 단위로 나눈 한 해의 시작일 뿐이다.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기대를, 그것도 잔뜩 품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맞이한 오늘은 사실 별로 행복하지 못했다. 올해를 맞이하는 원대한 계획은 당연히(?) 세우지 못했고, 그렇게 계획 없이 시작한 오늘은, 평소보다도 더욱 시시한 일들로 채워졌다. 아니, 별 거 아닌 일들뿐 아니라 새벽부터 남편과 싸움으로 시작했고, 일출은커녕 온종일 바깥구경이라곤 해보지 못 하고 집에서만 보냈다.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오늘만큼은 특별한 날이어야 해. 우리는 꼭 행복해야만 해.’라고 이를 앙다물게 돼서 오히려 더 기분이 상했는지도 모르겠다.


새해가 밝으면 뭐하나. 내가, 남편이, 남편을 바라보는 내가 그대로인데.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누가 그랬다던데…


오늘도 나는 연휴 동안 한껏 게을러진 어제의 모습 그대로였다. 새벽에 남편과 다투고 코를 고는 남편 덕에 잠을 설치고 늦잠을 잤다. 그래도 아침엔 설거지를 하고 떡국을 끓이고 빨래를 했다. 어제 그렇게 다투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한 남편을 보며, 자기 듣고 싶은 콩순이를 들려주지 않는다고, 울며불며 화를 내고 약속을 지키지 않고 투정을 부리는 딸 때문에 마음에서는 화르르 불이 났다. 그 둘을 상대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 같이 놀자는 딸의 부탁을 외면하고 혼자 있었다. 식탁으로 와서 홀로 차를 끓이고 고요히 일기를 썼다. 그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게 오늘의 가장 큰 소소한 행복이었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딸은 빨리, 남편은 조금 더 오래 걸렸지만, 둘 다 화해는 했다. 시키지 않았는데도 점심 먹고 바로 설거지를 하고 자기 할 일을 하다가 딸의 방을 정리하는 남편을 보고 나도 한결 마음이 누그러졌고 저녁 때는 세 식구가 함께 이야기를 하며 감정을 풀어내고 막걸리와 우유로 건배도 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하루다.)



사소하고 사적인 나만의 행복의 나라로.


몇 달 전, 문화일보 한국인의 마음- 우리를 이해하는 7개의 질문 중 마지막, 정신의학 전문의 김건종이 말하는 ‘행복’— “인류에 보편적인 행복이란 없어… 내가 나랑 친해지는 방법을 찾아야”라는 특집 기사를 읽었다. 그중에서 환자들에게 자주 한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햇빛이 비치는 날엔 꼭 그만큼의 그늘이 진다. 삶이라는 게 밝음과 어둠의 조화인데, 거기서 어두운 감정들을 없애버려 하얗게 표백시키면 그건 삶이 아니라고. 행복은 상태고, 또 과정이기도 하다. 괴롭고 힘든 순간에서 느긋하고 평안한 순간으로 옮겨가는 것 말이다. 그렇다면 행복을 위해서는 힘들고 괴로운 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야기고….”


그래. 결국 내 행복의 주인은 나다. 진짜 행복이 뭔지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쉽게 규정할 수도 없다. 그리고 “하얗게 표백시킨” 행복보다도 “삶을 온전히 경험하는 게” 더욱 충만한 삶일 테니까. 위의 기사에 나오는 대로 나와 더욱 친해져서 “내가 나랑 함께 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그게 나의 행복이겠지?


다시 ‘내게 맞는’ 주문을 왼다.

힘을 빼자. 작게. 천천히. 조금씩.

지금 여기 내가   있는 만큼,  그만큼만. 하나씩. 마음을 다하자.


작년에 세웠던 계획들 중 지킨 것도 있지만, 대개는 무너졌다. 너무 원대한 바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올해는 거창한 결심Resolutions이 아니라 작지만 내게 중요한 루틴Routines을 지켜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올해는 나와 더욱 친해지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좋아하는 양희은 님이 부르는 ‘행복의 나라로’​를 들어야겠다. “나도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아주 사소하고도 사적인 나만의 행복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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