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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바닷빛 Jan 09. 2022

‘좋은 사람’?

니가 웃으면, 나도 좋다고? 아니, 니가 좋을 뿐.

K-장녀라서 그런 걸까?

어릴 때부터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좋은 사람’이란 뭘까. ‘좋은 사람’이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뭔가 고갱이 없는 곡식 쭉정이 같이 그저 ‘좋은 게 좋은 거’인 사람이 되고 말 테니까. 또 이미 충분한 권력을 지녔는데도, 그 힘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고, 언제나 어떤 관계에서나 피해자인 척하는 ‘좋은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 덕분에 언제 어디서든 자신은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에게도 경계를 품게 됐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정의는 이렇다. 자신의 신념이 뚜렷하더라도 (아니, 오히려 뚜렷하면 뚜렷할수록) 자신과 다른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 자신과 다른 사람들, 그중에서도 약자를 배척하지 않고 관용적인 태도를 지니는 사람. (힘껏 포용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공감할 줄 알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

친한 친구가 예전에 나를 두고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약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이 오래도록 남았다. 좋은 뜻으로 한 말이었다. 나도 당시에는, 아니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이 말을 굉장히 기쁘게(?) 받아들였다. 인간관계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는 편이(었)어서, 나는 내가 사람들에게 잘 맞춰준다고 생각했었다. 그 일을 즐겁고 기꺼이 하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기까지 했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약한 걸 바꿀 수는 없어도, 그 모든 관계에서 적어도 ‘나’를 먼저 중심에 두고 생각해야 한다고 믿게 됐다. 나는 내가 언제나 상대방에게 너그럽게 져준다고, 배려한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실제로는 안 그랬을 수도 있지만), ‘이것들이 갈수록 날 호구로 알아?’라는 억한 심정이 나도 모르게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고, 그게 나는 물론 상대방에게도, 우리의 관계에도 좋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토이의 ‘좋은 사람’ 가사가 갑자기 떠오른다.

자신이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보내는 애절한 고백에서 남자는 절절하게 외친다.

“니가 웃으면 나도 좋아. 넌 장난이라 해도~”

“나는 혼자여도 괜찮아~ 널 볼 수만 있다면~

늘 너의 뒤에서, 늘 널 바라보는 그게 내가 가진 몫인 것만 같아~~”

어느 정도 경험이 반영됐을지는 몰라도, 노래의 화자는 가상 인물이겠지만, 그런 사람이 앞에 있다면, 다시 생각해 보라고 간곡히 말해주고 싶다.

“한번 잘 생각해 봐.

걔가 웃으면 걔가 좋은 거야. 니가 좋은 거 아니다? 사람 마음 갖고 장난치는 거, 그거 정말 나쁜 거야. 그 장난을 왜 니가 받아줘야 하니. 그걸 받아주는 게 왜 좋은 사람이냐고. 그냥 호구야, 너.”

자기에게는 유독 혹독하고 남에게는, 그게 비록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모든 것을 다 너무나도 기꺼이 해주고, 헌신짝처럼 버림받아도, 늘 뒤에서 바라만 보기만 해도 괜찮고 좋다고? 그게 사랑이라고? 글쎄, 그렇다 치자. 그런 감정이, 대체 얼마나 오래갈 수 있단 말인가. 부모라도 그건 힘들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좋은 사람’에 집착하는 나의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어쩌면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되도록이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내 마음을 바라본다. 그러고 다시 한번 되뇐다. 꼭 그렇게 힘들게 막 노력하지 않아도 돼. 네가 너무 아프면 그냥 가끔은 놔버려도 돼.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이상, 적당히 나빠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