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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닷빛 Jan 17. 2022

선택의 기준

오늘 하루가 영원히 반복된다면...?

벌써 수개월째, 마음 한편 계속 부담인 일이 있었다. 원래도 할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분위기에 휩쓸려서 부탁을 승낙하고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 일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로 비롯해 가뜩이나 꼬인 인간관계가 더 꼬일까 봐 골머리만 끙끙 앓았다. 오늘 드디어 용기를 내어 거절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했다. 몇 개월이 아니라 몇 년은 묵은 체증이 내려간 느낌이다. 휴.


꺼림칙한 일이라면, 애초에 아니오라고 제대로 거절하는 게 장기적으로는 나나 상대방에게나 낫다. 상대방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계속 부담스러운 마음만을 돌려 표현했던 내 잘못이다. 애초에 제대로 정리를 해서 거절했다면, 이렇게 마음 불편할 일도, 뒤늦게 거절해서 더 미안해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나 본인에겐 그게 제일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도살장 끌려가는 소도 아니고, 굳이 왜 그냥 참으려고만 했을까. 참는다고 해결될 일도 아닌데. 나도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려서 다행이다.



"이미 무거운 짐을 한 보따리 들고도 바리바리 다 들고 가려고 하고, 세상 무른 거 같은데 은근 정면대결은 또 한다." 대학 때 절친이 나를 두고 한 이야기다. 대학 이후로 그래도 이고 지고 가는 버릇을 많이 놨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다른 감당하기 힘든 일 때문에 '이제 정말 한계'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오늘도 거절을 못 한 채 계속 그냥 어영부영 끌려갔을 거다.


절친의 말이 맞다. 나는 내 기준이 뚜렷하면서도 (그러니까 정면대결도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느라 지칠 정도로 마음을 많이 쓰는 편이다. 아니, 쓰는 편이었다,고 힘주어 써 본다. 마음을 좀 덜 쓰면, 그만큼 정면 대결할 일도, 마음이 너덜너덜해질 일들도 줄어들겠지. 오늘의 거절을 기점으로 다시 작고 사소한 것에, 혹은 내 마음이 가지 않는 일에 마음을 덜 쓰고 애초에 후회하고 뒤늦게 수습할 일을 만들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아낀 마음으로 중요한 일에, 혹은 해야만 하는 일에 집중하기로 한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니, 반은 온 셈이다.


전생의 전생 같이 느껴지는 라디오 피디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보통 생방이지만, 주말 방송은 녹음일 때가 많다. 평일도 진행자의 사정상 녹음을 하기도 한다.


물론 여러 가지 사고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지만, 생방은 아무래도 시간의 제약이 있다 보니 그 순간에만 집중해서 잘 끝내면 된다. 그러나 녹음은 다르다. 편집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진행자도 게스트도 작가도 피디도 마음가짐이 알게 모르게 달라지나 보다. 그렇게 조금씩 느슨해지는 마음들이 모여 오버된 녹음 시간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정해진 방송 시간을 너무 넘어서면 결국 고생은 나의 몫이다. 또 녹음 스튜디오는 여러 프로그램이 같이 쓰기 때문에 다른 팀의 일정에 차질을 빚기도 한다. 정말 여러 가지로 민폐다.


방송 시간을 넘어선 분량이 한 5분 내외라고 하면 노래 2절 자르고, 게스트 얘기를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하며 무의미한 "아" "음" 이런 식의 말버릇들을 위주로 잘라낼 시도라도 해 본다. 그러나 5분이 넘어서면 정말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촉박하게 녹음했을 때는 방송을 제때 넘기기 위해서, 조금 시간이 있다고 해도 이미 늦어진 퇴근 시간을 조금이나마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뭉텅뭉텅 들어낼 수밖에 없다. 녹음 시간이 늘어나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내가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왜곡할까 봐, 걱정은 걱정대로 한다. 최악이다. 녹음 중에도 시간 체크를 다 하고 칼 같이 끝내는 진행자가 있다면 물론 최고겠지만, 진행자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피디로서도 방송에 나갈 노래도 미리 다 넣어놔 준비를 끝내고 녹음 중에는 진행자의 시간 체크를 돕고, 녹음이 원활히 시간에 맞춰 끝나도록 적절히 개입하는 게 현명하다.


그러니까 편집에서 가장 중요한 건 편집할 거리를 많이 만들지 않는 거다. 진행자와 게스트가 5분, 10분 더 얘기한다고 큰 깨달음이나 큰 재미를 줄 확률은 별로 없다. 백번 양보해 주옥같은 이야기가 간혹 나올지도 모르겠다. 주옥 찾다 지옥 노동하는 경우가 백이면 구십은 되지 않을까.


이번 일도 그렇다. 사방팔방 다 신경 쓰고 배려하기에는 지금 나를 짓누르는, 다른 짐만으로도 충분히 무겁고 버겁다. 이거라도 애초에 미리 거절했으면 그간의 마음고생도 조금은 덜 했을 텐데… 미련했구나 과거의 나야. 아니야.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됐다. 앞으로 잘하자 미래의 나야.



어쩌면 얼마 전 읽었던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덕에 이런 깨달음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니체의 영원회귀 이야기를 하면서 저자는 모든 것이 하나도 변함없이 끝없이 반복된다고 가정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매일의 지표로 삼아보라고 했다.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지금 그 테킬라 한 병 정녕 마실 텐가? 그 때문에 끝없이 지속될 숙취를 감당한다고 해도? 영원회귀는 우리에게 인생을 무자비하게 검토하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도록 만든다. 영원히 반복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무엇인가?" (내가 번역한 것이라 국문판과는 좀 다를 것이다.)


 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믿지는 않는다.  순간을 여기에  결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영원회귀 덕에 좋은 선택의 기준이 생겼다.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남을 배려한답시고 선택하기를 주저하고 어려워하는  마음이 덕분에 가벼워졌다. 지금 중요한  뭐지?  마음은 어떻지? 만약 이게 영원히 반복된다면 나는 이를 과연 (얼마나) 감당할  있을까?


덧.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정말 재미있다. 강추! 삶의 단계마다 각 철학자들의 철학과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인생의 지혜를 다루었다. 영원회귀 말고도 밑줄 백만 개 치면서 읽고 필사까지 여러 장 했다. (아래는 니체의 영원회귀 부분. 행동이 아니라 태도에 주목하는 것도 참 좋았다.)


덧 2. 운이 좋게도 저자의 인터뷰에 (통역으로) 참여하고 그걸 정리하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 책에서 빛났던 저자의 안목과 위트, 삶을 대하는 태도에 안 그래도 팬심이 절로 생겨났는데 인터뷰를 하니 더욱 좋았다. 이제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졌으니 원고를 잘 마무리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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