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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닷빛 Feb 11. 2022

빵 굽는 번역가 엄마

나를 찾는 일

아주 오랜만에 사워도우 빵을 구웠다.

토요일 아침에 발효종에 밥을 주고 오후에 본 반죽을 한 다음 1차 발효를 3-4 시간, 그러고 하룻밤 내내 2차 발효를 하고 일요일 아침에 구웠다.

(일단 그렇게 탄생한 빵 자랑 좀… ㅎㅎ)


발효점을 잘 찾았으면 하트 칼집이 조금 더 부풀었을 것 같은데 약간 아쉽다.
자른 단면은 요렇게. 내가 만들었지만… 맛있다.


2020년 3월 말, 코로나가 한창일 때 사워도우 발효종을 만들었으니 벌써 3년차다.


미국의 중년은 코로나와 중년의 위기를 사워도우로 승화시켰다는 우스개가 있을 만큼, 2020사워도우 열풍은 그야말로 핫했다. 나도  흐름에 동참. 계기는 단순했다. 이스트를 구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에 봉쇄령이 떨어졌던 2020 3 중순, 휴지 사재기를 비롯해 물류 대란이 시작됐다. 집에만 있어야 하니 시간도 겠다,  그래도 관심이 있었는데 발효종이나 만들어볼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  마흔 기념 프로젝트를 사워도우로 해보자!” 그렇게 통밀가루와 파인애플 주스를 섞고 일주일 동안 꼬박꼬박 밀가루와 물을 주었다. 조금씩 보글거리는 발효종이 귀엽게 느껴졌다. 그렇게    생일에 맞춰  발효종이 탄생했다.


그러고 2년이 지났다. 그간 코스트코에서 산 밀가루 포대만 네댓은 될 거다. 지금은 글도 쓰고 번역도 하고 다른 일도 한다고 베이킹을 멀리 하고 있지만, 한창 빵을 구울 때는 1-2주에 적어도 한 번씩은 구운 것 같다. 에그타르트나 쿠키 정도만 빼고는 내가 만들었던 모든 빵/과자류에 발효종이 들어갔다. 브라우니나 머핀, 바나나 빵, 팬케이크, 와플은 물론, 심지어 부침개에도 발효종을 넣기도 했다.


그렇게 만든 빵들을  많이 나눠 먹었다. 지인들에게 가져다주면서 멀찍이 떨어져서라도 문가에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해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밀가루 반죽을 만지면서 느껴지는 편안함도, 나눠 먹는 기쁨도 치유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나도 중년의 위기와 코로나의 불안을, 여러 가지로 우울했던  시간을 베이킹으로  넘겼는지도 모르겠다.


발효종을 직접 만들어 빵을 굽는  분명 번거로운 일이다. 일단 시판 이스트를 쓰는 것보다 훨씬 시간과 공이  많이 들어간다. 사워도우를 만들려면 지난한 발효과정이  필요하다. 시판 이스트로 하면 4시간이면 충분할 텐데 사워도우 빵은 발효 시간이 두 배 넘게 걸린다. 대신 그만큼 풍미가 좋다. 건강에도 좋다. 사워도우 발효종으로 만든 빵이 일반 빵보다 소화가   되고 당지수(GI지수) 낮다고 한다. 시간과 노력이 좋은 재료를 만나 건강하고 맛난 빵을 낳는다.



예전에 썼던 블로그 글에 내가 ‘제대로 시작하는블로그의 제목은 ‘ 굽는 번역가 엄마 짓겠다고 했었다. (그래 놓고 다시   브런치 이름을  바닷빛으로 했는지는예전 글을후후.)  오스터의 ‘ 굽는 타자기 염두에  제목이었다. 국문 제목은 원제 ‘Hand to Mouth’ 비해 훨씬  낭만적인 느낌이다. 나라면 ‘생계형 글쓰기혹은 ‘먹고살기 위하여정도로 번역했을  같지만, 지금의  제목 마음에 든다. 빵을 구워내(야만 했던) 타자기로써의 글쓰기, 폴 오스터는  낭만적인 제목 뒤에 숨은 시간과 노력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 굽는 타자기> (한국어 판본에는  오스터의 희곡이  덧붙여서 나왔다) "나는 일을 하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배우고, 세상에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정도로 요약될 자전적 이야기다. 유명 작가  오스터도 세상에는 찌질해 보였을 삶을 견디며 살았구나, 라는 마음에 위로가  책이다. 물론 미국 사회를 날카롭게 고발하며 " 많이 사고,  많이 만들고,  많이 쓰라는 선동과, 돈이 열리는 나무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추라는 부추김이 끊임없이 거듭되었고, 사람들은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발작적인 정신착란으로 픽픽 쓰러져 죽어갔다."라고 표현한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런 고발에만 그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좇아 돈이 되는 일을 거부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았던 정말 대단해 보였다. 무턱대고 배를 탄다거나 프랑스에 가서 살고 번역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일들은 무척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해 보니 나란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무턱대고 남편 따라 미국 오고 번역을 하며 (지금은 돈을 버는 남편에게 빌붙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구나…)

 

 오스터는 새아버지의 도움으로 에소 <플로렌스> 호를 탔던 일을 다음과 같이 당당하게 설명한다. "그렇게 배를 타고 떠나는 것으로, 내가 무엇을 증명하고 싶어 했는지, 지금도   수가 없다. 아마 어딘가에 안주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니면 단순히 내가  일을 해낼  있는지 보기 위해서, 내가 속하지 않은 세계에서도  입장을 견지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점에서는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안 내가 무엇을 성취했는지는 말할  없지만, 그래도 역시 실패하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라고. '확실'이란 단어를--한국어는 물론 번역자인 김석희 씨가 쓰신 거겠지만,--힘주어 썼을 모습이 상상됐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구절이 많았지만, 작가가 되고자 하는 독자인 나의 그물망에 걸린 부분은 다음과 같다.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쓰는 것이었다." 등의 문구에 밑줄을 그으며 읽다가 문득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는 내가  책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책을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쓰는 것이었다."라고   있을까?


직장을 때려치우고 부인과 함께 어린 아들을 키우며, 들인 시간을 따지자면 "최저 임금보다 겨우 한두 푼 많은 정도인" 번역을 하며 생활했던 소회도 눈길을 끌었다. "적어도 우리는 자유로웠다. 아니, 적어도 우리는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나는 직장을 때려치운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좋든 나쁘든, 이것이 내가 선택한 생활 방식이었다. 돈벌이를 위해 번역을 하고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쓰느라, 그 몇 년 동안은 책상 앞을 떠난 순간이 거의 없었다. 거의 온종일 종이에 낱말을 적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 글을 보면서 폴 오스터가 대단해 보이고 그가 부러우면서도 갑자기 함께 사는 부인의 심정은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부인인 리디아도 같은 생각을 했을까? 혹시 남편의 일할 자유를 위해, 어린 아들을 키우면서 자신의 자유를 저당 잡히고 살아가는 느낌은 아니었을까? 리디아훗날 이혼한 데에는 이런 막막한 시간을 견뎌야만 했던 리디아의 마음이 작용했던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자유로운가? 온종일 종이에 낱말을 적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지 않으니 할 말이 없는 걸까? 아니, 내가 너무 여유롭게 일하고 있나...? "해결책은 번역을 최대한 빨리, 그리고 숨 쉴 겨를도 없이 계속 해대는 것뿐이었다."는데... 작업량을 맞추기는커녕, 작업을 안/못하는 날이 많아질까 두려워 일을 쉽게 맡지도 못하니... 나 원.

 

자신의 작품을 알아봐 주고 후원해 준 존 버나드 마이어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마음이 찌르르했다.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이 생활고와 싸우면서 그냥저냥 시간을 파먹고 있던 그 풋내기 시절, <누군가>가 나를 후원해 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게는 엄청난 격려가 되었다. 존은 나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밝힌 첫 번째 사람이었고, 나는 그 고마움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


그런 고마움을 나도 느껴보고 싶다. 그러려면 일단... 써야지. 그래, 쓰자. 빵은 가끔만 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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