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닷빛 Dec 16. 2021

불행의 꼬리에는 뭔가가 있다

그게 행복이기를. 

불행에도 꼬리가 있다. 그 꼬리를 잡고 뭔가가 온다고 믿는다. 오늘도 그랬다.


큰 불행이랄 건 아니었다. 그냥 차 후미등이 나간, 시답잖은 일이었다. 단지 늘 시간과 싸우고 있다고 느끼는 요즘, 내 시간과 관심을 잡아먹을 일이 하나 더 생겼다는 게 싫었다. 남편이 큰맘 먹고 시간을 내서 자동차 점검을 받고 엔진 오일이랑 에어컨 필터를 갈고 온 지 열흘밖에 안 됐다는 사실이 심기를 더 거스르기도 했다. 요새 다시 바빠진 남편이 도저히 다시 갈 여유가 없다고 했을 때 조금 더 짜증이 나기도 했을 것이다. 곧 여행을 앞두고 있으니까 안 고칠 수도 없고. 


사실 이 차를 주로 쓰는 건 나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가는 게 맞다. 하지만 차 쪽은 웬만하면 남편에게 맡아달라고 했다. 애초에 남편이 자동차 점검을 가게 된 것도 이런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바쁘다는데. (물론 실제로 바쁘다.)


애초에 집안일이라는 것이 서로의 영역이 깔끔하게 딱 맞아떨어지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단호하게 선을 나눈다고 해도 지켜지지 않기 일쑤다. 2인 3각으로 쳇바퀴를 달리면서 여러 공을 저글링하는 느낌이랄까? 어떻게든 공만 안 떨어뜨리면서 나아가면 일단 성공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그러니까, 결국, 어제 차를 다시 맡기러도, 오늘 차를 찾으러도 내가 갔다는 말이다. 내가 지난 8년간 경험한 미국은, 기다림의 나라다. 분명 차가 나왔다는 전화를 아침 8시에 받지 못한 전화 음성 메일로 확인하고 다시 한번 전화로 확인하고, 그것도 집으로 센터에서 차를 보내줘서 차를 찾으러 갔는데, 수리 내역을 듣고 계산을 하고도 또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오늘도 할 일이 태산인데, 픽업도 일찍 가야 하는 날인데... 이렇게 초조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동동거리는 게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우리 차를 접수했던 담당 직원은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세차 중이라고 곧 나온다는 말을 30분 정도 되풀이했다. 어쩌겠는가. 이미 어제도 다른 직원을 보내 나를 집에다 내려주고, 오늘도 집에서 서비스센터까지 태워주는 서비스를 제공한 직원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덕분에 시아 픽업까지 시간은 딱 한 시간. 스멀스멀 짜증이 밀려오려고 해서 에라 모르겠다, 외식이다! 를 외쳤다. 마침 근처에 테이크아웃 중동음식점이 있었다. 남편과 딸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팔라펠을 먹으면 되겠군! 5분 만에 운전해서 음식점에 간다. 


팔라펠 세트 메뉴를 시키고 바로 학교 앞으로 가서 차에서 먹으려고 하니 왠지 처량하다. 집으로 가서 먹기로 결심한다. 아이패드를 열고 얼마 전부터 다시 보기로 시작한 미드 '모던 패밀리'를 보면서 점심을 먹는다. 먹자마자 부리나케 아이를 픽업하러 가야 했지만, 그 삼십 분만큼은 오롯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내가 좋아하는 미드를 보는 나만의 시간이었다.


하찮은 불행의 꼬리로 고작 팔라펠을 혼자 미드를 보며 먹은 게 이다지도 글을 쓰며 자랑할 일인가. 글쎄... 그 금쪽같은 시간을 행복이라 우기며 기어이 처절하게 누리는 이 마음을... 남편은 알까. 아니, 꼭 남(편)이 알아줘야만 하는가. 내가 알아주면 되지. 앞으로도 불행의 꼬리에 오는 행복들을 악착같이 누릴 테다. 

작가의 이전글 콩순이를 듣다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