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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Feb 11. 2024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이토록 치열한 자아성찰이라니...

1. 요즘 에세이는...
2. 무교니까 얘기할게. 전도는 이렇게.


1. 요즘 에세이는...


성인 독서량이 매우 줄었다고 한다. 1년에 책 한 권을 안 읽는 성인이 50%를 넘는다고 하니 우리 사회가 개인들에게 점점 더 여유를 주지 않는 듯싶다. 그런데 신기하게 서점에 가면 신간은 또 넘쳐난다.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에세이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도 서평 의뢰가 가장 많이 들어오는 섹션이 에세이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에세이의 장점은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고 또 상대적으로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에세이 등의 산문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나도 서평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에세이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에세이를 찾는 사람들은 보통 퍽퍽한 삶에서 벗어나 책을 통해 잠시나마 힐링을 하고 힘을 얻고 싶어 한다. 나와 전혀 다른 공간에서 살고 있는 작가가 어쩜 나와 이리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면서 나 혼자만의 고통, 어려움 등이 아니었구나, 하고 위안받는다. 그래서 역시나 에세이의 가장 큰 매력은 작가의 생각과 행동을 우리가 글로써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주제의 에세이들이 많아도 글쓴이가 어떻게 자신의 이야기와 경험을 풀어가는지에 따라 그 글이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올지 여부를 결정한다.

에세이의 주제 대부분은 행복, 외로움, 공허함, 사랑 등 우리가 평소에 느끼는 흔한 감정들이다. 흔하게 느끼는 감정을 소재로 글을 써 내려간다는 건 독자에게 소재의 차별성을 잃고 시작하는 것이기에 그만큼 다른 점에서 어필을 더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요새는 제목에 가장 많은 힘을 쓰는 것 같다. 그러나 빛 좋은 개살구라고 제목은 화려하고 개성 있으나 내용은 대부분 비슷하다. 사실 그 정도 글을 쓴다는 것도 어려운 것이기에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많은 에세이를 읽다 보면 요새 트렌드인지는 몰라도 에세이마다의 차별성을 찾기 힘들다.


2. 무교니까 얘기할게. 전도는 이렇게.


왜일까. 왜 차별성이 없게 느껴질까. 그건 순간적인 감정과 감상을 담은 에세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처절한 고민 끝에 잉태되는 솔직한 자아성찰이 아닌 지금의 감정을 멋진 표현으로 치장한 글들이 많다는 뜻이다. 사실 특정 순간에 느꼈던 감정을 잊지 않고 간직해서 글로 풀어낸다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원하는 독자들도 많기에 그런 책들이 출간되는 것이다. 나도 주 1회 이상 에세이를 쓰고 있지만 내가 지금 말하는 '순간적인 감정과 감상'을 뛰어넘는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앞에 말한 일반적인 에세이에 대한 비판은 사실 나에 대한 고백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공지영 작가님의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가 더 크게 다가왔다. 다른 것보다 본인에 대한 자아성찰을 끊임없이 치열하게 했다는 게 글을 읽는 내내 절절하게 느껴졌다. 글이 잉태됐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스토리적인 측면에서도 [섬진강으로 이사한 후 강아지 동백이를 만나고 예루살렘을 떠나 일행들과 분리되고 혼자만의 시간을 지낸 뒤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박경리 선생님 회상으로 마무리]를 지었는데 한 편의 로드무비 같았고 요즘 말로 빌드업이 굉장히 잘 됐다고 생각되었다. 멋들어 보이기 위한 에세이가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하고 있다는 게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작가 공지영 님에 대한 이름은 물론 잘 알고 있었지만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이 책에 나왔듯이 이혼을 세 번 했다든지 하는 사생활도, 이 분이 가톨릭 신자라는 것도, 몰랐다. 가십거리에 더 관심이 많았던 '나'이기에 예전에 배우 클라라와 SNS 상에서 약간의 설전을 벌인 정도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완전히 저자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이 책은 가톨릭 신자인 공지영 님이 예루살렘 순례 길 동안의 있었던 사건과 과거 자기반성이 주를 이룬다. 종교적 색채가 있어서 종교가 없는 내게는 표면상 거부감이 있을 수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많은 동화를 이루게 된 것 같다. 종교를 통해 이 정도의 사유를 할 수 있다면 정말 종교를 가져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종교를 믿으라고 강요당하지 않아도 책 한 권으로 스며들었다고 할까. 종교를 빼고 에세이로만 봐도 정화가 되는 시간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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