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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Nov 25. 2023

화(火)

화(火)를 평생에 걸쳐 내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단연코 없을 것이다. 과학적으로 화는 적당히 풀 수 있을 때 풀면 좋다고 많이 설명한다. 제대로 풀지 못하면 울화병, 속병 등으로 불리는 속칭 화병(火病)에 걸린다. 그래서 시중에 보면 '화'와 관련된 책도 많이 나오고, TV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화가 나기 전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선제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들도 알려준다. 만병의 근원이 화라고 하지 않나.

그럼 화는 어떻게 풀 수 있을까. 화라는 놈은 참 신기하다. 화가 난다고 해서 그 즉시 화를 내어도 쉽사리 풀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화를 내면 더 흥분되거나 분(憤)이 쌓인다. 분이 풀릴 때까지 화를 내보려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은 이유다. 차라리 잠을 자거나 게임을 하는 등 화가 난 곳에서 벗어나면 화가 식는다. 상황에 몰입하지 말고 한 발 물러서면 화가 사라진다.


최근 우리 사회의 사건사고들을 보면 '화'에서 출발하는 것들이 많다. 학부모의 갑질로 인한 교권 추락부터 지나가는 사람에게 무차별 상해를 일으키는 묻지마 폭행까지. 일련의 사건들이 결국 화를 참지 못해 일어난 일들이다. 심지어 '세상에 화가 난다'며 컵라면 먹던 초등학생에게 칼을 휘두른 10대까지 나타났다. 남녀노소 할 것이 없이 화가 참 많은 우리 사회다.

올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분노조절장애 진료 건수가 1만 869건으로 집계됐는데 절대적인 수치보다 걱정되는 것은 증가폭이다. 2018년 보다 13% 증가했으며, 2015년과 비교하면 무려 35%나 증가했다. 최근 뉴스에 나오는 일들이 단순한 기분 탓은 아니라는 방증이다.

이러한 사건들에 대한 원인에 대해서 많은 분석이 있다. 실제로 이 글을 쓰면서 뉴스를 검색해 보니 고립된 사회, 분열된 계층, 처벌 수위 미달부터 게임중독(?), 사이코패스까지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모두 일리가 있고 훌륭한 얘기지만 내가 볼 때 가장 큰 이유는 화를 외면할 여유(餘裕)의 부재가 아닌가 싶다. 앞서 얘기했듯이 화가 났을 때는 맞서는 게 아니라 피하고 식혀야 한다. 화는 그렇게 푸는 것이다. 맞닥뜨리면 더 분해진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사람들에게 그러한 여유를 주지 않는다. 삶이 팍팍하다. 궁지에 몰아넣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성과주의, 성적주의,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압박감과 박탈감, 위기감, 상실감들이 항상 우리 주의를 맴돌고 있다. 최근 천정부지 치솟은 2차 전지 관련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주변의 0부장님, 0대리님이 그것으로 대박이 난 것을 보고 본인만 뒤처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포모(Fears Of Missing Out) 증후군이 많았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모든 게 다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여유가 있으면 화가 나지 않는다. 같은 일을 경험해도 '허허허'가 자연스레 나온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대해진다. 상사의 기분이 좋을 때를 맞춰 보고서 제출하는 것도 능력이라는 말이 같은 맥락이다. 정답이 없는 문제 같지만 꼭 찾아야 하는 문제가 지금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화(火)로 인한 더이상의 화(禍)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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