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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Dec 09. 2023

호의

'호의가 계속되니까 권리인 줄 안다'는 명언인지 명대사인지가 존재한다. 이 글을 통해 오늘은 좀 예민한 이슈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바로 얼마전 OMR카드 미마킹 0점 처리에 대한 학부모의 법원 소송 관련이다. 이미 첫 줄에서 내 감정과 의견은 다 전달됐으리라 믿는다. 시험시간 전까지 마킹을 못했을 경우 통상적인 경우였다면 마킹한 곳까지만 점수를 반영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국룰 아닌가. 지금 생긴 규정도 아니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방식도 아닌, 식상한 말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OMR카드 시험이 생긴 이후에는 지속되어 온 일이다.

중3 학생의 학부모라면 소송을 건 어머니 또한 30~50대일 확률이 높고 당연히 그녀도 학교 다닐 때 경험했던 시험 방식일 것이다. 40대 전후라고 한다면 나와 그리 차이 나지 않는 나이대다. 80년대생, 70년대 생일 것이다. 이렇게까지 나이를 유추해 보려는 이유는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뉴스들이 이 나이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예전에는 나보다 윗세대 어른들의 교양 없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내 친구, 내 동생, 내 선배들 사이에서, 즉 내 또래에서 일어나고 있다니 너무 충격적이다. 그래도 빠르게 변화된 세상에서 나름 논리적이고 상식적이며 자유로운 사회를 원했던 세대 아닌가.


몇 년 전 50대였던 우리 회사 어느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나는 전화가 오면 그 사람이 몇 년 생인지를 먼저 알아봐. 그리고 80년대 생이면 너무 긴장되더라고. 의견이 다르면 본인의 말이 맞다고만 생각하고 확실하냐고 계속 묻잖아."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80년대 생으로 우리는 소위 '논. 리. 적.'이라는 것을 매우 좋아하며, 우리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커왔다.

80년대 억압된 사회 속의 반항과 함께 현재의 민주주의가 이룩되면서 지금의 80년대 생도 자랐다. 이 시대에서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미덕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과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자유의 끝은 방임이 아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와 '간섭하지 않고 제멋대로 내버려 두는 상태'는 벌써 그 내용이 다르지 않나. 그러기에 '자유'의 끝은 '매우 자유로움'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짊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너무 뻔하지만 뻔하기에 당연해야 한다.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는 선생님들에게 촌지를 주는 것이 너무 당연시 됐다. 부끄러운 사회였다.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고 부모들이 경쟁하듯 다투었다. 그러한 모습을 본 우리들은 나중에 커서 그런 사회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좋은 대학에 열을 올렸던 베이비 부모 세대들의 교육열에 학을 뗐고, 자신들이 낳은 아이들은 그저 본인이 원하는 것을 즐겁게 하며 자라기만을 바랐다. 억압과 강요 없는 자유를 만끽하기를 바란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부 사회적 현상은 그런 순순함을 넘어 지나친 측면이 있다. 나에게 그리고 나의 울타리에 있는 사람의 권리에 대한 집착 아닌 집착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자유를 가장해 타인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극단적인 표현인가. 지나치면 모자라니만 못하다고 했다. 내가 걱정되는 것은 일부 사람들 자유와 권리를 언급하며 행하는 다소 지나친 태도들 때문에 어렵게 이룩한 진짜 자유의 의미가 훼손될까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후퇴하게 만드는 꼬투리가 잡힐까이다. 호의는 호의로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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