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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Dec 23. 2023

바둑

어렸을 때 바둑을 배웠다. 그렇다고 바둑을 둘 줄 아는 건 아니다. 바둑은 모두 알다시피 19개의 가로세로줄이 엮여 있는 361개의 점에 흑과 백이 서로 번갈아 돌을 놓아 집을 완성하는 것이다. 최근 인공지능 AI에 그 우위를 내어주기는 했지만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 경지의 유희로 불린다. 경우의 수가 무한대에 이르기 때문에 사실상 인공지능도 최고의 수를 찾을 수는 없는 게 바둑이다. 당시에는 바둑이 그 정도인지도 몰랐지만 동네에 하나씩 있는 기원에 엄마손을 따라가게 됐다.

그런 바둑을 초등학교 5학년부터 1년 정도 배웠었는데 중고등학교 때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아 바둑 두는 법, 즉 정석이라고 하는 것을 다 까먹었다. 그런데 경험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 초등학교 때 배웠다는 것만으로도 바둑이라는 것에 거부감이 없고, 심지어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 친구들끼리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와 ‘크레이지 아케이드’, ‘카트라이더’ 등의 게임을 하면서도 집에서 가끔 TV를 돌리다 얻어걸리는 바둑방송에 잠시 리모컨을 멈추곤 했다.

그 습관(?)은 군대에서도 이어졌다. 이등병, 일병 때야 TV 채널 권한이 없으니 그저 선임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따라 시청했지만, 상병, 병장으로 올라가고 나 혼자 내무실에 있을 때가 많아지자 바둑방송을 보는 날이 많아졌다. 밖에서 작업을 하고 들어온 후임들은 그런 나를 보며 ”아~ 윤병장님~ 제발 바둑은 안 보면 안 됩니까. “라고 애원을 했다. 차라리 본인들이 응원하는 팀이 아니어도 야구나 축구를 틀어달라는 것이다. 걸그룹과 예능 프로가 하루의 단비와 같은 시절임을 당연히 알기에 응당 후임들의 말을 따랐다. 물론, 내가 바둑을 본다고 무슨 선비 같은 사람은 전혀 아니고, 나도 걸그룹과 예능 프로를 매우 좋아하는 범인이기도 하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제대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내가 바둑을 가끔 본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고 나는 바둑을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고 깨달았다. 신문을 보던 시절에는 넓은 신문의 모서리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던 주요 바둑 경기 해설을 잠시 멈춰 정독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바둑을 둘 줄 안다거나 볼 줄 아는 것은 아니다. 둔다는 의미와 본다는 의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구와 대국을 할 실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둑을 왜 좋아하는 것일까. 나는 바둑판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나에게 바둑의 매력은 똑같은 조건의 바둑판에서 무수히 똑같은 바둑알을 가지고 하는 행동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완전 똑같은 기보의 경기 결과가 나온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정석이라는 것은 있지만 정석은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기초 도구일 뿐 결국 사람마다 그 정석을 활용하는 방법은 다 다르다. 그래서 바둑을 보면 많이들 얘기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이 보인다. 흥망성쇠. 이는 한 개인일 수도 있고, 조직일 수도 있고, 나라일 수도 있다. 4000년 전에 개발된 이 놀이가 지금까지 이어진 이유는 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그 재미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조건의 다른 결과. 한 치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인생에서 우리는 항상 최선의 경우의 수를 생각한다. 결과의 최선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한다. 일부러 차선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차선을 선택할 때도 결국 확률적으로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선인 것이지 아무 조건 없이 차선을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생을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바둑을 보고 있으면 그것이 보인다. 초반에 발 빠르게 움직여 여기저기에 집을 짓는 기사가 있는가 하면 자기 영역이 확실해질 때까지 움츠려 있으면서 안전하게 집을 확장하는 기사도 있다.

지금 나의 인생을 바둑으로 비유하면 어떤 모양일까. 내 기분에는 대마도 잡힌 것 같고 세력도 많이 뻗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바둑은 중반부터가 진짜 싸움이고 마지막 끝내기에 따라 승패가 완전히 갈린다. 내 인생이 아직 패배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후반 역전을 꿈꾸고 있다고 하고 싶지도 않다. 인생 역전하고 싶다는 말은 곧, 현재의 내 인생 스코어가 뒤지고 있다는 것 아닌가. 뭔가 지금 지고 있다고 인정하는 느낌이어서 그 단어는 싫다. 무한대에 가깝다는 바둑보다 훨씬 많은 경우의 수가 앞으로의 내 미래에 남아있는 것만은 사실이기에 포기나 좌절보다는 희망과 열정을 나에게 넣어줘 볼까 한다. "그래! 나, 잘하고 있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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