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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Dec 30. 2023

찬바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찬바람은 사람들에게 참 안 좋게 인식이 된다. '증시 찬바람', '부동산 찬바람', '골목상권 찬바람', '고용 찬바람' 등 찬바람이 들어가서 좋아진 어감이나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특히 어른들에게는 찬바람이 분다는 것은 이제 올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러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이것이 더욱이 반갑지 않다. 물론 찬바람 불면 하루가 다르게 무릎도 더 시려지고 이쪽저쪽 관절에 통증이 오는 것이 더 큰 이유일 수도 있다.

여하튼 날씨가 추워지고 찬바람이 분다는 것은 이제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밌는 건 만 나이를 시작한다 할 때, 정치적인 견해를 떠나서, 쓸데없이 만 나이로 바꿀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그 생각에 조금은 유연해졌다. 우리나라처럼 위아래가 확실한 사회에서 나이를 물어보면 만 나이가 시작되고 난 다음부터는 '그래서 몇 년생인 건데요?'라고 다시 물어보는 불편함까지 생겨 '굳이... 만 나이를...'이라는 생각이 컸다. 사실 지금도 그것이 불편하다는 생각에는 큰 변화가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연말이 다가오자 내년 1월 1일에 한 살을 더 먹지 않는다는 사실이 내심 반갑고 즐겁긴 하다. '옛날 나이의 나'와 '만 나이의 나'가 다르지 않은데 불리는 나이가 2살이 어려졌다는 사실에 안도감마저 든다.


이렇게 나이에 대한 생각이 드니 예전 어른들(?) 아니, 몇몇 선배들이 떠올랐다. 어른들이라는 말이 먼저 나온 이유는 돌이켜보면 이 사람들은 항상 어느 나이에서든 나이가 든 채로만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대학생 시절에 나보다 2~3살 밖에 차이 안나는 선배들이나, 지금 내가 보면 앳되다는 느낌이 있는, 많아봤자 20대 후반 정도의 선배들 입에서 "어려서 좋겠다~.", "내 나이 되어봐라~."식의 말이 종종 나왔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말은 하는 사람만 꼭 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말들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은 떠오를 것이다.

나는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을 살면서 가장 안타깝다고 생각되는 유형 중 하나로 꼽는다. 이유는 항상 자기의 나이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순이 상대방을 칭찬하기 위해 "젊어서 좋겠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젊은 나이를 매번 부러워하기 때문에 그 말을 한다. 상상해 보자. "이 나이에 내가 해야 해?"라는 말을 달고 사는 23살의 청년. 혹은 "어려서 부럽다. 어리면 무조건 쁘지~"라고 말하는 25살 졸업반 여자 선배. 어떤가. 충분히 혈기왕성하고 너무 좋을 나이인데도 현재의 자신을 못 누리고 있는 것 같지 않나. 그런데 실제로 내가 신입생 때 그런 말을 하는 선배들이 있었고 내가 군대를 다녀오고 3학년, 4학년, 졸업, 취업을 해도 그분들은 또 그렇게 말했다. 아마 연락은 안 되지만 지금도 그러지 않을까.


찬바람이 불면 많이들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가장 큰 이유는 앞에 언급했듯이 한 해가 이제 끝나고 나이가 든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올 한 해도 잘 살았나?" 하며 지난날을 잠시 생각해 본다. 그런데 이제는 만 나이로 바뀌지 않았나. 1월 1일이 되어도 법적으로는 한 살 더 먹는 게 아니다. 결국 한 살을 먹었다는 것도 인간이 만들어낸 디지털적 틀에 불과하며, 우린 지금도 하루를 더 늙어가는 아날로그 현실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올 한 해도 잘 살았나?'가 아닌 '지금 잘 살고 있나?'로 바꾸어서 질문해 보려 한다. 지금 잘 살고 있는 게 쌓이면 당연히 올 해도 잘 살고 있는 게 되겠지. 그래서 지금의 나를 사랑하고 지금의 내 나이를 최선 다해 즐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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