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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Jan 13. 2024

워라밸

이제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단어 워라밸. work-life balance의 준말이다. 우리 말로는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한다. 우리 사회의 직장에서 이제 워라밸은 가장 으뜸으로 여겨야 하는 덕목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너무 일이 힘들어 일상 생활에 방해가 된다면 거부하는 젊은 층이다. 조금 못 벌어도 자기 생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나도 적극 공감한다. 각종 수당이 있지만 그냥 일 안 하고, 그 돈 안 받고 집에 6시 땡되면 가고 싶다.

계속되는 저출산의 해결책으로도 워라밸을 뽑는다. 직장에서 이미 녹초가 됐는데 어떻게 연애를 하고 결혼해서 애를 낳겠냐는 것이다. 사실 애는 낳고 난 다음이 진짜 시작 아닌가. 이렇게 사회가 발전하고 어느 정도 먹고살 수 있게 될수록 우리들은 워라밸을 찾는다. 뭐, 인생 역전할 정도의 보수가 뒤따른다면 목숨 한 번 걸어보고 직장에 몸을 던질 각오는 되어 있으나 안타깝게도 나에게 그런 중책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승진체계, 보상체계가 비합리적일수록 직장에 올인하고 싶은 마음은 사라진다. ​​


결국 이러저런 이유로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워라밸을 하려고 한다. 빨리 일을 끝마치고 집에 가서 헬스하고, 필라테스하고, 대학원 다니고, 게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넷플릭스 보려 한다. 아침에는 미라클 모닝을 해서 수영 다니고, 독서를 하고, 명상도 하며 최대한 나에게 줄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하고자 한다. 요즘 미라클 모닝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다들 대단하다고 칭찬하며, 스스로도 부지런하게 사는 것 같아서 뿌듯한 기분이 든다. 나도 그렇다. 아침에 운동하고 회사에 가면 확실히 시간을 더 유익하게 활용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이게 워라밸일까.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게 일과 삶 사이의 절대적 시간 배분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무리 시간 배분을 칼같이 한다고 해도 우리는 보통 9 to 6 이기에 9시간은 일에 매여 있을 수밖에 없다. 출퇴근 시간과 준비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11시간 정도는 소요된다고 봐야 한다. 24시간 중에 11시간을 이미 직장에 쓰고 있으니 나머지 11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잠을 줄여가며 본인의 여가를 늘려가야 한다. 왜냐 워라밸이 삶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간 배분 워라밸'의 문제는 매일 시간 확보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야근이 있거나 회식이 있으면 마음이 좋지 않다. 빨리 집에 가야 할 거 같아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도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윗분들이 무엇을 지시하거나 밑에 사람이 일을 잘 해결하지 못하면 정시 퇴근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탐탁지 않다. 자연스레 매일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고 남들은 모르지만 본인은 매일같이 시간 확보를 위한 싸움을 하고 있게 된다. 마치 상대는 없는데 주먹을 휘두르는 쉐도우 복싱처럼 말이다. 얼마나 피곤하고 비효율적인 삶인가.


그래서 나는 진정한 워라밸의 시작은 직장에서도 자신만의 가치를 키울 수 있을 때라고 본다.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돈을 벌기 위한 곳이 아닌 자신을 직장 내에서도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좋은 건 본인이 선택한 전공의 직업을 얻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기에 일터에서 자신을 발전시킬 어떠한 원동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보수, 승진도 되겠지만 주변 사람들과의 교우관계 등도 포함될 수 있다.

직장은 아이를 키우는데 방해만 되는 곳일까. 집에 가고 싶은데 쉬지 못하게 하는 괴롭히는 곳일 뿐일까. 오히려 아이를 키우기 힘들어 집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직장에서 주변 동료들을 통해 힘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일까. 또 집에 혼자 있으면 외로운데 직장에서의 성과가 삶의 에너지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잠시나마 가사의 고충을 잊을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무료한 삶의 충전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됐을 때의 워라밸이 진정한 일과 삶의 균형 속에 태어난 워라밸이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적, 기업적 문화가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이다. 예전 직장처럼 일과 삶의 구분을 없애자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워라밸에 대한 접근 방법이다. '시간 배분 워라밸'이 아닌 '일터에서 삶의 에너지가 올라갈 수 있는 워라밸'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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