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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Jan 06. 2024

연락처

불현듯 연락처를 한 번 쭉 내려봤다. 요새는 연락처를 보려면 카톡으로 보기 마련이다. 나는 보통, 정신 사납다고 해야 할까 이런저런 이유로, 카톡에 친구 목록이나 업데이트 프로필 등을 접어둔다. 괜히 열려 있으면 업데이트 됐을 때 빨간 점이 뜨고, 그 사람의 근황을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게 싫기 때문이다. 원래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어떻게 사는지 아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명절이 되면 괜히, 스팸정도로 치부되지만, 그 기회로 연락 한 번 더 해보고 잘 사는지 물어봤다. 인맥 관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가 알고, 나랑 잘 지낸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건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같은 번호를 성인이 되고서는 계속 사용하고 있기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누적되어 핸드폰에 있었다. 그러다 '연락처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연락처 다이어트는 내 핸드폰 속에 의미 없게 느껴지는 사람들을 지우는 인맥정리 행위를 말한다. 연락처 내의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지운 것은 2번 정도 되는데 첫 번째는 내가 취업이 잘 안 됐을 시기다. 그때는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고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 연락을 다 차단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나와 너무 멀어졌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삭제했다. 내 연락처 역사의 1차 숙청 시기이다.


그리고 5년 정도가 또 흘렀다. 몸도 마음도 힘든 시기가 내게 왔다. 외로웠고 이 세상에 홀로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잘못을 하지 않아도 하늘이 나를 미워할 수 있구나, 했던 시기다. 다시 컴컴한 방 안에서 내 핸드폰을 들었다. 나는 이런데 다른 이들은 참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내게 연락 한 번 주지 않는 이들이 보였다. '굳이 놔둘 필요가 있나...' 생각해 보면 옛 기억과 추억에 의해 내가 먼저 연락한 사람들이 꽤 되었다. 연락을 하면 반갑게는 맞아주었지만 그들이 먼저 나한테 연락한 적이 없는 사람들. 바로 2차 숙청. 이게 뭐라고 안 지웠을까 싶었다. 지우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신기하게 외롭다는 생각이 덜 들었다. 평소 연락 안 하는 사람들은 없어지고 나와 소통하는 사람들이 핸드폰에 많은 비율로 남아있기 때문인 것도 같았다.

나이가 들수록 연락을 한다는 게 어렵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현대는 '누군가에게 연락을 한다는 게 용기가 필요한 시대'라고 평가하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순수하게 안부가 궁금해서, 가볍게 연락하는 게 아니라 무슨 용건이 있어야만 연락을 하게 된다. 순수 안부 전화를 하려고 하면 과연 상대는 연락을 받고 싶을까, 하는 고민이 생긴다. 지금까지 나에게 연락 한 번 안 줬다는 건 내가 그에게 이미 잊힌 사람이라는 것인데 굳이 나란 사람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는 걸까. 괜한 부담을 심어주는 건 아닐까. 내가 예민할 걸까. 이게 맞는 걸까. 짧은 시간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경우의 수가 지나간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안부 전화가 오면 더 기분 좋게 맞이한다. 진짜 반가워서 반갑게 받는 것도 있지만, 전화를 해주는 행위가 고마워서, 얼마나 용기를 냈을까를 헤어리게 되어서 더 고맙게 받는 것이다. 지금 내게 전화 준 친구는 과연 이런 고민을 하고 한 걸까. 나처럼 생각이 많지 않아 고민이 없었어도 괜찮다. 어쨌든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는 바쁜 현실에서 나라는 존재가 그의 머릿속 깊숙이 어딘가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거잖아. 그래서 그 안부 전화가 반갑다. 안부를 묻는 게 용기가 필요한 시대에 사는 우리. 차라리 연락처에 아무도 없다면 그런 고민이 사라질까. 현재 나에게는 연락처 다이어트가 조금은 이로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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