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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Dec 16. 2023

교집합

교집합이 무엇인지는 다들 알 것이다. 수학시간을 떠올려보자. 떨어져 있는 동그라미 2개가 가까워져 겹쳐지게 되면 선생님은 겹쳐지게 된 부분을 빗금 친다. 그리고 그것을 교집합이라고 알려준다. 두 집합 사이의 공통적인 원소로 이루어진 새로운 집합의 탄생이다. 문과생인 나에게 그 집합이 화학적 결합인지, 물리적 결합인지, 단순한 나열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동그라미가 서로 겹치는 모습은 각각의 원래 집합이 서로 상대의 영역에 '침범 혹은 함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에게도 교집합이라는 게 있을까.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원래의 내가 있고 전혀 모르는 그녀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데 우리가 만나는 순간 새로운 집합이 생긴다.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고유의 영역과 그녀만이 가지고 있던 영역의 일부가 함께하며 신비의 영역이 태어난다. 나는 그대로인데 누군가를 만남으로써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지 않는 나의 새로운 모습이 생기는 것을 보면 인간에게만큼은 교집합이 화학적 변화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교집합은 점점 사랑이라는 것으로 싹튼다. 평범했던 나의 인생과 미지와도 같은 그녀의 인생이 겹쳐지고 난 다음부터는 어제의 오늘과 오늘의 오늘, 그리고 내일의 오늘은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된다. 남들에게는 똑같이 보여도 그 둘에게만큼은 이날이 특별해지고 의미가 있어지는 것이다.  수업을 듣지 않아도, 친구들을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게 좋았던 엄마의 집밥도 이때만큼은 생각나지 않는다. 항상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뭐 하고 있을까, 무엇을 좋아할까. 설렘이라는 게 '마음이 가라앉지 아니하고 들떠서 두근거리는 느낌'이라는데 상대를 생각하면 그 단어로도 부족한 기분이다.

그런 그녀가 사라졌다. 아니 내 앞에서만 이제 보이지 않게 됐다. 어디에선가 잘 지내고 있을 테지만 지금의 나와는 아니다. 교집합이 화학적 변화라고? 그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된다. 화학적 변화라면 이렇게 갑작스럽게 분리될 수 없을 것이다. 내 것과 그녀의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했는데 이제는 구분을 해야 한다. 매일 같이 이용하던 카페를 지나친다. 데려다줬던 그 버스는 이제 탈 이유가 없어진다. 그녀가 좋아했던 음악을 플레이리스트에서 지운다. 이제 그것들은 모두 그녀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여집합이라는 것이 있다. 전체집합에서 특정집합을 제외한 나머지 원소들의 집합을 말하는 것이다. 그림으로 표현하면 커다란 네모인 전체집합 안에 특정 동그라미가 쏙 빠진 모양이다. 1~10까지가 전체집합이라면 그중 2, 3, 4가 빠진 것과 같은 것이다.

그녀가 떠나고 나니 그녀와 함께한 교집합이 텅 비고 나머지만 나에게 남은 느낌이다. 그녀가 내 것을 가져간 것일까? 차라리 그랬으면 싶다. 나라는 사람을 기억이라도 한다는 것이니. 그러나 그것은 의미 없는 내 상상일 뿐이고 현실은 그저 그 교집합 부분이 그녀가 아닌 내 인생의 어느 길에 툭하고 버려진 게 아닐까 싶다. 상대의 영역을 '함께'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침범'했었나 보다. 누군가와의 교집합이었던 것이 없어지고 나에게 여집합만 남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런 건 안 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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