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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Mar 02. 2024

꾸준함의 놀라움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년 평균 독서량이 4.5권이라고 하는데 이는 평균의 함정일 것이다. 나같이 서평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이나 책을 읽는 게 영화, 드라마 보는 것보다 잦은 사람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훨씬 낮을 것이 분명하다. 통계에도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경우가 50%가 넘는다고 한다. 이해는 간다. 대학생 때는 지긋지긋했던 교과서를 벗어던지고 놀아야 하니 그럴 것이다. 요새는 학점 때문에 전공 공부도 엄청 열심히 한다고 들었다. 대학교를 벗어나서 직장을 가면 다를 것 같지만 이제는 너무 피곤하다. 우리는 만성피로를 달고 산다. 그렇다고 건강을 위해 헬스나 필라테스라도 하는 날에는 더욱 시간이 부족하다. 간신히 유튜브 보고 침대에 무사히 잘 들어가면 다행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사람들이 책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책을 읽는 것에 대한 동경은 확실히 있다. 내가 책을 읽고 이를 통해 글을 쓴다고 하면 '아, 나도 책 좀 읽어야 하는데'하는 분들을 많이 봤다. 실천은 못하고 있지만 막연하게 책을 읽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기회가 된다면 실행에 옮기고 싶은 것이다. 다만 위에 언급한 내용들 때문에 매일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앱으로 쇼츠 동영상을 보는 건 그렇게 쉽고 시간이 잘 가는데 책을 넘기는 행위는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누워서 핸드폰을 보는 건 쉬운데 두 손바닥만 한 책을 배 위에 두고 읽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 같다.


오늘 이렇게 독서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이유는 나도 책을 읽고 싶지 않을 때가 있어서 그렇다. 어제, 오늘이 그렇다. 심심할 때는 그렇게 읽고 싶은 게 책인데, 요즘처럼 서평을 올려야 할 책들이 5권 정도 밀려있으면 이건 내 의지가 아니라 떠밀려 읽게 된다. 모든 일이 숙제가 되면 하기 싫은 것처럼 나도 그렇다. 잡지사에 다닌다는 소개팅녀가 그랬다. 나는 신방과 전공을 못 살리고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것에 아쉬움이 있어서인지 블로그와 브런치스토리에 그 열정을 조금 쏟는다고 하자, 본인은 오히려 그게 더 행복한 거 같다고. 덕업일치가 좋을 수도 있는데 좋아하는 게 일이 되는 순간 취미 하나가 없어지는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업로드 마감의 압박을 받을 때 그 말이 참 맞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렇게 하는 작업이 그래도 업무가 아니고 내가 언제든지 조율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이어서 참 좋다. 단지 J 성향이 커서 그런지 블로그는 화목일, 브런치스토리는 토일, 이렇게 업로드하기로 스스로 정한 것을 꼭 지키려 한다. 열심히는 안 하지만 꾸준히 하려는 성격이다. 헬스장에 가서도 무게를 증량하고 가동범위도 늘려가야 한 단계 발전할 텐데 힘들면 기구를 그냥 내려놓는다. 하지만 스스로가 신기하게도 꾸준하게 헬스장에는 간다.


오늘처럼 책을 읽기 싫다고 생각할 때 불현듯 이런 계산을 해보게 되었다. 아무리 책을 읽기 싫은 날도 하루에 책 10페이지씩만 읽는다고 가정해 보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생각하기에 10페이지 정도는 누구에게나 무난하다. 검지로 SNS 쇼츠 몇 개만 위로 넘기지 않으면 읽을 수 있는 수준이다. 그리고 너무 쉬운 계산인데 이렇게 10씩 1년을 매일 읽으면 3,650쪽이 된다. 보통 책이 300쪽 전후가 많으니 300으로 나눠보면 1년에 10권 정도의 책을 읽게 되는 것이다. 엄청나지 않나. 읽기 싫은 날 10쪽만 읽어도 1년에 10권 이상을 읽을 수 있다는 말이다. 새삼 꾸준함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고 놀랍다.

세어보니 작년 한 해 동안 내가 읽은 책이 100권이 넘었다. 읽는 속도도 늦고 성격상 끝까지 읽고 리뷰를 써야 하기 때문에 돌이켜보면 내가 어떻게 이 일을 달성했나 싶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자기 전에 TV를 끄고 소파에 누워서 책을 본 게 이렇게 누적이 된 것 같다. 연휴 기간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카페에서 며칠 동안 3~4권의 책을 읽은 적도 있지만 그런 식으로는 금방 지쳐서 100권을 채우지 못했을 것 같다. 또 운동을 마치고 가끔 거울을 보면 (물론 남자들의 전형적인 착각이겠지만) 몸이 많이 좋아졌다. 열심히는 안 하더라도 꾸준히 웨이트를 한 결과인 것 같다.

꾸준함. 누구나 꾸준함이 중요한 것은 안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책을 통해 간단한 산수를 해보고 스스로도 그 결과에 놀랐다. 내가 이미 그 꾸준함을 함께 한다는 것에 자부심도 느껴졌다. 비록 오늘은 책을 읽기 싫은 날이지만 그래도 자기 전에 10쪽은 고고싱~《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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