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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Mar 31. 2024

정상이라는 환상

인종차별이 천식의 원인이 된다는 거 알았던 사람 손?

1. 읽으면서 촉법소년이 떠올라
2. 우리 사회를 거시적 관점으로 바라보기


1. 읽으면서 촉법소년이 떠올라

최근 촉법소년에 대한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촉법소년은 형법 제9조에 따라 형벌을 받을 만한 잘못을 한 만 10세 이상∼14세 미만 연령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 규정이다. 만 14세면 예전 나이로 16세이기에 중3에 해당되며 최근에는 이 나이 또래들의 외적 성장이 두드러져 일반 성인에 해당되는 신체능력을 보이기에 이를 촉법소년이라는 틀로 범죄를 봐주고 좌시할 수 있는지가 논란의 핵심이다. 사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최근 우리 사회에 촉법소년 범죄에 대해 굉장히 위기감을 느꼈으며 촉법소년의 나이를 낮추는 것에 적극 동의하는 입장이었다. 지금도 그것에 대해서까지는 변함없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을 이 소년소녀들의 잘못으로만 치부하는 사회 분위기가 되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정상이라는 환상>은 그런 책이다. 나는 촉법소년에 대한 예시를 가장 먼저 들었지만 우리 사회에는 그 외에도 정말 많은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묻지마 폭행, 갑질 문화, 갈라치기 등.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병태를 인식하는 방법이 거시적이라는 게 이 책의 특징이다. 개인의 문제, 소수의 특징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하나의 큰 생태계로 보고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곳부터 치유를 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끝에 이 책의 제목(정상이라는 환상)이 나오게 된다. 위의 문제들이 개인적이고 일부의 일탈로 발생한 것이 아닌 사회 전체의 시스템과 문화적 문제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정상은 아니라는 말이다.

읽으면서 가장 소름 돋았던 것은 인종차별이 천식의 원인 중에 하나라는 것이었다. 이 책에 따르면 어떠한 부모가 우울증 등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면 그 아이가 천식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하면서 인종차별도 천식을 가져온다는 연구결과를 보여줬다. 상식적으로 한 가정으로 좁혔을 때 부모의 건강 상태와 아이의 천식은 어느 정도 연결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인종차별과 천식을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한편으로는 부모, 자식의 관계를 사회, 사회원으로 대입해서 생각하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보니 많은 병의 근원이 스트레스 호르몬에서 시작되었다. 인종차별은 당연히 그 피해자에게 이 호르몬의 증가를 가중시켰을 것이며 천식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2. 우리 사회를 거시적 관점으로 바라보기

다시 말해 이 책은 우리 사회를 거지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흥미로운 건 개인의 질병 또한 그 관점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정상이 아니기에 그 영향의 결과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질병이 외부에서 갑작스럽게 생겨 우리에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병폐의 결과인 것인 게 새롭다. 책 초반부터 그 얘기를 하기 위해 빌드업이 굉장히 좋다. 처음에 어린아이들과 부모와의 상관관계를 왜 이렇게 많은 페이지를 걸쳐 이야기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지금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문제점이 일순간에 땜빵식으로 고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어딘가의 상처가 딱지가 되었을 때 그 딱지와 흉은 겉보기에는 정상처럼 보여도 처음의 생살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고, 정상 행동과 기능이 동일해도 아픔이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트라우마가 천식을 발생시킬지 누가 알았겠는가. 사회적 문제를 거시적으로 보려는 시도와 관점은 사실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병마저도 사회적 문제의 결과로 보는 것은 새로웠다. 묻지마 칼부림이나 폭행이 일어났을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원인 분석이 그 행위자의 '사이코 기질'로 결론짓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해버리면 명확하게 사건을 마무리할 수는 있으나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개인의 문제로 사건이 좁혀져 제2, 제3의 묻지마 사건이 나왔을 때 이를 대응할 수 없게 된다. 정신 질환과 신체 질환 모두 사회적 맥락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550페이지라는 두꺼운 책임에도 굉장히 흥미로운 예시로 채워져 있어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 가보 마테의 내공이 느껴지며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산형 책은 분명히 아님을 밝히고 보장한다. 우리가 지금 정상이라고 여기는 대부분의 일상을 뒤집어 생각하게 하며 개인의 질환을 치유하고 사회의 병폐를 갱생시키려는 저자의 노력과 시각이 훌륭한 책이다. 책의 두께만큼 읽는 내내 사유할 게 많아서 생각의 두께가 깊어질 것이다. '이 세상의 문제는 결코 당신 혼자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적인 일도 아니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며 모두가 해결해야 할 일이다!'라는 말로 마무리하겠다. 추천.《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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