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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Mar 17. 2024

쇼펜하우어의 말

염세주의에서 삶의 힘을 얻는 아이러니

1. 참을 인 세 번이면 호구라고 하잖아
2. 긍정적인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1. 참을 인 세 번이면 호구라고 하잖아

개그맨 박명수 님은 일반적이지 않지만 공감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잘 알려진 명언 중에 '티끌 모아 티끌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거다', '고생 끝에 골병 난다',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 등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참을 인 세 번이면 호구다'라는 말이 제일 와닿았다. 슬프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됐다. 친절하고 착한 사람이 우대를 받아야 하는데 더 쉽게 대하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일까지 전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도 똑같다. 이제 회사 내 어느 정도 선배가 된 입장에서 거부감 없는 후배에게 일을 더 부탁하게 된다. 대신 그만큼 미안하니까 커피도 사주고 밥도 챙겨주고 하지만 솔직히 우리는 알지 않나. 돈 없어서 못 사 먹는 것도 아닌데, '그런 거 안 받을 테니 그냥 가만히 놔두는 게 제일 좋아요 선배님!'이라는 것을.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타인의 나쁜 행동을 기억하라고. 우리는 타인이 나쁜 행동을 했다면 타인이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 용서하고 이해하라고 배웠을 테지만 그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타인의 나쁜 행동을 잊는 것은 실컷 벌어놓은 돈을 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기에 그와 있었던 나쁜 일은 우리가 살면서 얻은 소중한 경험이다. 그 경험이 비록 좋지 않은 기억으로 끝났지만 그것마저도 잊는다면 또다시 시간 낭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경험을 가지고 그와 비슷한 사람에게 대응할 수도 있다. 사람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지나가는 돌멩이에게 화를 내는 것과 같다고 여기는 쇼펜하우어이기에 참 그 다운 사고라는 생각이 든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라는 책을 읽어보니 박명수의 명언과 결을 함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명수가 언급했기에 개그 소재가 됐던 것이지 쇼펜하우어가 조금 다르게 포장했다면 그가 했던 표현들은 분명 철학적 사상이 됐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철학서라고 해야 할지 자기계발서라고 해야 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철학자가 쓴 책이기에 인문학이고 철학서이지, 자기계발서라고 해도 큰 이질감은 없다고 느꼈다. 단순 명언집이라고 해도 될 거 같다. 그리고 쇼펜하우어에 대해 몰랐다고 해도 이 책을 읽어보면 그가 참 염세주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 염세주의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에서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2. 긍정적인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염세주의로 힘을 얻어?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염세주의는 허무주의가 아니다. '어차피 다 같이 죽는 세상, 살아서 무엇하리~'가 아니라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따뜻하고 말캉말캉한 곳은 아니라며 경계토록 하는 것이 염세주의다. 더 비판적으로 대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혹자는 너무 피곤하게 사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염세주의의 장점은 기대감이 바닥에 있기 때문에 실망하는 법도 없거나 최소한으로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걱정과 불행은 사실 희망과 기대감에서 나온다. 그것의 디폴트 값이 낮아져 있다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기분이 나쁠 것도 없다. 염세주의라고 하면 삶을 비관적으로만 보며 당사자는 우울하고 냉정할 것만 같지만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응당 일정 부분은 갖추고 있어야 할 부분이다.

염세주의의 반대라고 하면 낙관주의를 떠올리는데 다른 책에서 그런 것을 읽었다. 낙관주의자는 발전이 더디다고. '실패해도 괜찮아, 틀려도 괜찮아, 뒤처져도 괜찮아.'식의 극단적 낙관주의를 떠올려보면 당연히 그럴 것 같다. 오히려 그런 낙관주의가 허무주의로 빠질 수도 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으니 말이다. 많은 책에서 우울한 사람들에게 희망 섞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살짝 섞어 조언해 주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좋은 마음으로 다시 보듬을 때는 그 상대방은 보듬을 당신을 더 깔보고 더 만만하게 여길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는 쇼펜하우어의 불편한 진실 같은 직언을 무시하기 힘들다.

책은 콤팩트하고 사족이 없어 좋았다. 쇼펜하우어의 다른 책을 읽어보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이 책이 에센셜판이어서 그러지 않나 싶다. 각 챕터별로 이 책의 엮은이인 가나모리 시게나리의 생각이 짧게 담겨 있는데 방해되지 않을 분량에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의 제일 뒤표지에는 '어떻게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말로 이 책을 홍보하고 있는데 보통의 다른 책이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는 것을 상기해 보면 그러한 책의 대척점에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끝과 끝은 서로 닿는다고 어쨌든 고통을 줄이든 행복을 높이든 우리가 원하는 건 지금 사는 삶을 잘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고 이 책이 조금은 그 독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듯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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