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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Apr 20. 2024

감옥

순서: 1, 2. 3, 4.

1. 요새 법치주의의 붕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정치계를 보면 여야를 떠나서 서로 잘못했다고 다투면서 그 책임을 상대에게 덮어씌운다. 생각해 보면 요새라는 말도 과도하다. 그냥 내가 정치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쯤부터는 매번 그랬던 것 같다. 심지어 이제는 특검이라는 말도 너무 자주 듣다 보니 전혀 '특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냥 그러한 수사 제도 자체를 '상시' 검사, 즉 상검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우리 같은 서민에게 정계야 원래 그런 곳인 것 같고 기대치도 많이 떨어져 있으니 한발 물러서서 재계로 고개를 돌려보려 한다.

그러나 여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할 기업 총수와 기업인들이 갑질과 여러 비리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문제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일반인보다 왜인지 모르게 양형을 적게 나오는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대형 로펌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는 관대해 보인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럼 서민들끼리는 다를까. 요즘은 양형 기준에 대한 논란과 개정 목소리가 크다. 촉법소년들의 범죄에서부터 음주상태,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을 보면 이게 도대체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2. 쓰다 보니 우리나라의 법치주의의 작동 원리와 방식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건 아니고 오늘은 이 사람들이 가야 하는 감옥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사형제도는 없어지고, 태형은 진즉에 없어졌기에 감옥만이 유일한 형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고하(관념적)를 막론하고 죄를 지으면 감옥에 간다. 위에서 언급한 양형 과중에 대한 언급도 쉽게 말해 죄를 지은 만큼 감옥에 가지 않는 것 같다는 게 말이다. 그런데 사람을 감옥에 둔다는 것도 생각해 보면 참 흥미로운 제도이다. 감옥에 가둔다는 것의 진정한 효과는 무엇일까. 신체적 제약을 가한다? 할 수 있는 행동을 마음대로 못하게 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시간의 소모'가 가장 큰 피해인 것 같다. 인간에게 동등하게 주어지는 것은 시간이다. 더 오래 살 수는 있지만 이는 건강의 문제이고, 하루에 주어진 시간은 똑같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게 시간이다. 감옥은 바로 이 시간을 갉아먹는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이기에 감옥에 똑같이 수감이 되어도 정계나 재계에서 중요한 사람들에게 더 큰 피해를 안게 된다. 초 단위를 다투는 CEO가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무것도 못했다고 가정해 보자. 심리적, 정신적으로 더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들은 사실 다이아몬드와도 바꾸지 않는 게 시간일 것이다.


3. 실제로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샌델 교수가 강의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땅에 떨어진 돈 100달러를 주워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경제학적으로는 안 줍는 게 더 이득인 결론이 나온다. 왜냐하면 빌 게이츠는 초당 150달러 이상을 벌고 있기에 그것을 발견해서 줍는 과정에 30초만 소요하더라도 4,500달러(약 620만 원)를 손해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빌 게이츠는 인터뷰에서 주울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주인을 찾아 돌려줘야 한다." 였으며 "본인의 재단(빌 앤 멜린다 게이츠)에 준다는 대답을 했다. 주머니에 '쏙'하는 게 일반적인데 역시 마인드가 다르긴 하다. 중요한 것은 그만큼 이런 부류의 사람에게는 돈보다 시간의 가치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보면 미국의 가상화폐거래소 FTX 창업자 뱅크먼-프리드는 보석금으로 3,200억 원을 내고 구금에서 나오는 선택을 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보석금으로 나와도 기껏해야 가택연금인데 그래도 그는 이를 선택했다. 보석금 사상 최대액이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돈은 그다음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리노이주에서는 보석금 제도를 폐지하기도 했다. 불과 3년 전 일이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불구속 상태에서 똑같이 재판을 받을 권리를 주겠다는 것인데 부자는 이제 보석금을 아낄 수 있네,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이 구속되는 일도 없어졌다. 어차피 부자들은 보석금을 주고 나오게 되고 가난한 사람만 구속이 되는 지금의 제도가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4. 나는 이러한 모든 것이 감옥이라는 제도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우리는 감옥에 가기 싫은 게 가족도 못 만나고, 맛없는 음식을 매일 먹어야 하며, 수감하는 동안 무서운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당하지는 않을지에 대한 불안감을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돈이 있는 사람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시간의 손실이다. 명품 매장 오픈런을 위해 누구는 시간을 죽이며 돈을 받고 대리 알바를 하지만 그 반대쪽은 지급하는 것을 선택한다. 사족이지만 사실 오픈런 알바는 나름 꿀 알바로 알려져 있으며 나도 대학생 시절이었다면 무조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이게 자본주의인 것 같다.

흥미로운 내용이고 철학적인 문제다. 그래서 여기서 어떤 결론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평등은 신체적 자유의 평등, 경제적 자유의 평등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시간적 자유의 평등이 아닐까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감옥이라는 곳이 생각보다 더 무섭고 위험하고 꼭 피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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