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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Apr 27. 2024

담배


순서: 1-2-3

1.
최근에 <SNL 코리아>(이하 SNL)라는 프로그램이 부쩍 인기다. 공중파 방송에서 성인 풍자 코미디가 설 자리가 없는 요즘에, OTT라는 이점을 이용해 정치, 문화, 성 등에 대한 주제를 거침없이 쏟아내기 때문이다. 터부시되는 이야기를 유머와 함께 곁들이는 블랙코미디가 외국에서는 일상화됐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서는 정서상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무대에서만큼은 인기 배우도, 유명 정치인도 포멀함을 좀 내려놓고 망가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오늘 얘기하고 싶은 것은 최근 SNL 시즌5의 코너 중에 <X 오피스>에 대한 것이다. <X 오피스>는 1990년 전후 우리나라 X세대가 신입이었던 당시의 회사 문화를 재현한 콩트이다. 내용을 보면 사무실에서 임산부가 있는데 담배를 피우는 상사, 출산 휴가를 이틀 준다고 하니 감사하다는 여사원, 미스김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남자들, 중국집에서 짜장을 먼저 주문하는 부장님 등 요즘은 상상할 수 없는 문화들이 나온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은 장면들이다.

우리나라를 보면 담배만 봐도 분위기가 이정도까지 바뀔 수 있나 싶다. 어렸을 때는 버스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허용될 정도였다. 야구장 갔을 때도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 때문에 냄새난다며 연신 코를 막고 숨을 참아낸 내 친구가 떠오른다. 그냥 그런 시절이었다. 대학교에 가니 여자 선배들이 건물 입구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우리를 맞이했고, 시립 도서관에 가면 '담배는 밖에서...'라는 에티켓 푯말이 있었다. 이게 에티켓이라는 것은 도서관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공부를 했다는 뜻이다. 의무가 아닌 남을 위한 권장사항 정도다.


2.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90년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정말 그런 시대였다. 당시의 어린이들이 놀았던 영상을 보면 놀랍다. 쇠로 된 정글짐, 구름사다리를 아이들이 마구 오간다. 지금 놀이터 놀이 기구는 다치지 않는 소재로 다 바뀌었다. 중고등학교로 올라가면 줄빠따 체벌은 기본이었고, 회사에서 부장님이 결재판을 날리는 것도 너무 당연했다. 고도의 경제 성장을 갑작스럽게 이룩했지만 그에 맞는 문화적 성숙도는 아직 따라오지 못한 시절이었다. 찾아보니 1991년 우리나라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7500달러 수준이었고 1994년도에 1만 달러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불과 3~4년 만에 50%가 올랐으니 국민들의 경제적 여유는 남달랐을 것이다. 잠시 IMF의 위기가 있었지만 국민적 위기로 감내하며 온 국민이 함께 극복하였고 이후에는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세계적 경제 대국이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 1인당 GDP를 듣고 새삼 놀랐다. 3만 3천 달러가 넘어섰다고 한다. 연봉을 생각하면 이정도가 당연한 건데 너무 옛날 수치가 머리에 박혀서 그런지 언제 이렇게 올라갔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2006년에 2만 달러를 돌파했고 3만 달러는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7년에 돌파했다. GDP로만 보면 오히려 지금이 10년간 정체기여서 전문가들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같은 저성장으로 들어서는 게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변화를 보면 놀랍다. 어렸을 때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울 수 있던 나라가 지금은 세계에서 화장실이 가장 깨끗한 나라가 됐고, CCTV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밤에 돌아다니기 안전한 나라로 꼽힌다. 이제는 애플, 테슬라 등과 경쟁하려는 기업까지 보유했다. 이들 기업의 목표는 패스트 팔로워가 아니라 퍼스트 무버이다. 그저 먹고살기 바빠서 다른 나라를 따라 하려는 것은 이제 벗어난 것이다. BTS, 기생충으로 대표되는 K-콘텐츠를 보면 더욱 기가 살아난다. 이제는 어느 특정 분야에서만큼은 세계를 선도하고 1등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3.
나는 우리나라가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정경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여전히 만연해 있지만 그래도 돌이켜 보면 굉장히 변화되고 많이 개선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성인지는 모르겠는데 항상 경쟁하려 하고 다른 나라 눈치도 보면서 발전하려는 노력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주식을 하는 입장에서 최근 삼성전자에 대한 위기설과 경쟁력 약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역으로는 그런 걱정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구나, 하는 자부심도 있다.

쓰다 보니 우리나라가 걱정 없는 나라인 것 같은데 전혀 그런 말은 아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고, 고쳐야 할 것투성이다. 그러나 모든 변화는 정반합이라고 생각한다. 안 좋은 것을 알고 도려내려는 의지가 있다면 바뀐다. 우리나라가 월드컵 4강에 가고, 빌보트 차트 1위 가수를 배출하고,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을 만들어낼지 알았을까. 아니 그렇게 거창할 것도 없이 담배를 버스에서, 사무실에서, 심지어 집에서까지 피우지 못하게 될 것을 알았을까. 지금은 이미 일어났고 너무 당연하게 된 모습들이다. 그렇게 변하고 있다. 비판은 하되 너무 우리 스스로 자국을 비하하거나 깎아내리지 말고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대했으면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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