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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May 04. 2024

지옥

순서: 1, 2, 3

1.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지옥의 이미지가 있다. 불구덩이에서 죽지 못하고 뒹굴러야 하거나, 먹지 못하고 허기진 상태로 계속 굶어 있거나, 하루 종일 누군가에게 몽둥이로 맞아야 하거나, 가시덤불에 피를 흘리며 계속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신화 속 인물을 생각해 보면 프로메테우스처럼 독수리에게 간을 평생 쪼이거나 시시포스가 바위를 정상에 어렵게 올려다 놓으니 다시 그 바위가 아래로 굴러 떨어져 무한 반복해야 하는 것도 지옥이라면 지옥일 것 같다. 한 번 상상하기 싫은 상상을 해볼까. 지금 말한 예시들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정말 어렵다. 나름대로의 장단점을 아무리 굴려봐도 모든 것이 정말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 최악의 것들이다.

한편, 단테의 <신곡-지옥편>에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여기 들어오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정말 무섭지 않나. 일말의 희망도 없는 곳이 곧 지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위에 말한 지옥의 예시들을 보니 공통점이 보인다. 아프고, 따갑고, 무섭고, 고통스럽고 하는 것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어 보이는데 결국 한결같이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그중에 어느 것도 선택을 할 수 없었던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를 해봐도 귀결되는 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무희망이다. 그렇게 보니 단테의 지옥에 대한 표현은 정말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찔렀다고 볼 수 있다. 그러기에 800~900년 전에 쓴 그의 글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회자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2.

희망이 없으면 지옥이다, 라는 결론이 나오자 지금의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된다. 이제는 더 이상 놀랍지도 않은 저출산. 하지만 출산율 0.68이라는 숫자에는 도저히 '놀람'이라는 놈에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가 없다. 단순 산술적 계산으로 2,100년에 1,900만 명대로 인구가 줄어든다고 하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도와 같은 수치이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 50대 이상이 2,300만 명을 넘는 것과 비교해 보면 국가의 존망 문제인 것이다. 혹자는 도시국가도 잘 사는 나라가 많은데 이제 우리도 그렇게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런데 그 숫자를 계속해서 유지한 나라와 우리나라처럼 급격히 늘었다가 줄어든 나라는 경제적 파급부터 예상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당장 국민연금과 노인 부양 문제가 그것이다.

자연스레 N 포 세대라는 말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연애, 결혼, 출산을 뜻하는 3포에서, 집과 경력을 포함한 5포, 취미(희망)와 인간관계의 7포를 넘어 마지막으로 건강과 외모까지 포기한 세대를 말한다. 아래 세대에게 국민연금은 사실상 윗세대의 폰지사기가 아니냐는 자조적 개그까지 나오고 있다. 지금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월급의 절반 가까이를 윗세대 부양에 써야 한다. 온라인 게임도 이러면 외면당한다. 게임을 시작해 보니 이미 게임에 합류한 사람들이 모든 아이템을 다 가져간 상태이며 뉴비(신규 게임자)는 그들에게 착취만 당하는 구조다. 쪽수(?)도 밀리니 이겨낼 재간이 없다.


3.

단테가 말하는 지옥이 다가오고 있다. 아니 이미 희망까지 포기한 '대한민국'에게는 지금이 곧 지옥일 수 있겠다. 최근 국회의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국민 개혁안을 '소득 보장 강화안'이 채택되면서 결국 미래세대에게 더 부담이 전가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였다. 고갈 기간은 고작 7년 늘릴 수 있다고 한다. 전형적인 '나 몰라라'식 이기주의이다. 우리가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는 국민연금 개혁도 이런 식으로 결정되는데 과연 출산율에 대한 고민이 진지하게는 될까. 현재 우리 대한민국 서버에 희망을 안고 게임에 접속해도 되는 것일까. 희망이 없으면 지옥이다. 제발 그곳으로는 가는 선택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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