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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May 11. 2024

방어적


순서: 1-2-3

1. 불혹은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인데, 과연 나는 그러고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이 대답이야말로 확실하게 답할 수 있다. "No"라고. 매사 너무도 많은 유혹에 흔들리며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인생을 잘못 살고 있냐고 물으면 꼭 그렇지는 않다고 할 수 있는데 반대로 잘 살고 있냐고 물어도 이 역시 긍정적인 답변을 못하겠다. 이렇다 보니 나이가 들수록 과감성이 사라지고 행동에 방어적이 된다.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다른 행동에 적극적일 수 있겠는가. 좋은 의도로 시작한 선행이 때로는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뉴스 혹은 내 삶을 통해 많이 봤는데 이러한 경험도 방어적 행동에 한몫했으리라.

어떤 것을 선택했을 때 인생에서 좋은 점이 5가지, 싫은 점이 5가지가 동시에 생긴다면 그것을 선택하겠는가. 애매하다. 왠지 손이 가지 않고 망설여지게 된다. 지금 내 삶에 만족을 못 한다면 '하프 앤 하프'라는 선택지를 고려해 보겠지만 그럭저럭 평범한 삶이라면 굳이 알 수 없는 변수를 삶에 두고 싶지 않다. 사람이라는 생물 자체가 원래 좀 방어적이지 않나. 손안에 있는 한 개가 미래의 두 개보다 더 높은 가치를 부여받는 이유일 것이다. 그럼 좋은 점의 숫자를 늘려보자. 6가지, 7가지, 8가지, 극단적으로 9가지가 좋은데 1가지가 싫다. 그럼 선택해야 할까. 사람들은 물어볼 것이다. "도대체 그 싫은 한 가지가 뭔데?" 그렇다.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중요한 것은 좋고 나쁜 것의 산술적 개수가 아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에 달려 있긴 하다.


2. 그런데 그 선택해야 할 대상이 옷도 음식도 집도 아니고, 게임 캐릭터도 아니고, 여행지도 아니고, TV 프로그램도 아니며 심지어 장래희망이나 직업도 아닌 '사람'이라면 어떨까. 그 '사람'도 그냥 직장 동료나 동호회 회원이 아닌 평생 함께한 반려자라면. 많이 고민된다. 최근 자료를 보니 30대 미혼율이 42%를 넘었으며, 내가 속한 40대도 18% 가까이나 된다. 30대는 10명 중 4명이 40대는 10명 중 2명 정도가 결혼을 안 했다는 것인데 신기한 것은 그들이 연애를 결코 안 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본인과 맞지 않은 사람과는 굳이 연애를 안 하고 싶은 것뿐이다. 예전 어른들이 그냥 주변에서 이어만 주면 결혼하는 시대였다면 이제는 그럴 거면 차라리 혼자가 낫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사실 내가 그렇다. 그래서 누구는 나한테 너무 따지고 재는 거 아니냐며 조언 아닌 조언을 한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내 딴에는 고민이 많은 것인데 그게 결국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연애 경험이 쌓이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쓸데없는 감정 소모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연애하면 좋은 거 알고 있다. 설레는 감정도 생기고, 어디 돌아다닐 때 항상 같이 할 수 있으니 좋고, 내 편이 항상 생기는 기분. 그런데 반대로 싸우거나 사소한 다툼이 생기면 그거처럼 신경 쓰이는 것도 없다. 말 그대로 사소한 것인데 나와 제일 친밀한 사람과 발생한 것이어서 사소한 일이지만 그 순간은 제일 큰 걱정거리가 된다.

그리고 그 골이 깊어지면 결국 남녀는 헤어진다.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그 헤어짐도 어떻게 하다 보니 잘 극복했던 것 같다. 주변에 친구들도 많았고, 하고 싶은 게임도 많았고, 과제도 있고, 암튼 아프지만 잠시 잊을 수 있는 무엇인가가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그때는 짝사랑도 많이 했던 것 같다. 친구들끼리 저녁에 포차에서 소주 한 잔 마시면서 어떻게 하면 그 여자에게 말을 걸 수 있을지 얘기도 하고 그랬던 기억들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이가 들고 그런 게 없어졌다. 짝사랑? 이제는 절대 없다. 확실하지 않으면 애초에 마음을 주지 않게 된다. 마음이 아프고 싶지 않아 사랑도 방어적으로 하게 되기 때문이다.


3. 그래서 여사친과 대화 중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남자들이 나이가 들수록 썸탈 때 머리를 굴리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머리를 굴리거나 계산적이 된 것이 아니다. 어렸을 때처럼 과감성이 없어지고 방어적이 된 것이다. 어렸을 때는 한 가지만 좋아도 불같이 뛰어드는데 이제는 한 가지만 안 좋아도 과연 괜찮을까부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연애가 쉽지 않고, 결혼까지는 언감생심이다. 뭐, 오늘은 이게 잘못 됐다, 잘 됐다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원인 분석을 하려는 것도 아닌 요즘 내가 그런 것 같아 내 생각을 좀 써봤다. 언제부터 내가 혹은 우리가 이렇게 방어적이 됐을까. 꼭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 이 부분에 대한 확답은 앞에 질문과 달리 빈칸으로 남겨두고 오늘 글을 마쳐야겠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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