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선 Apr 13. 2024

팩폭

요즘에는 '팩폭' 정도의 단어는 더 이상 줄임말 수준에도 끼지 못하는 것 같다. 팩트폭행을 뜻하는 이 말은 사실만을 나열하여 상대를 꼼짝 못 하게 하는 화법을 말한다. 원래 맞는 말이 더 아픈 법이다. 사실이 아닌 소문은 일반적으로 흘려보내면 그만이지만 진짜 스토리를 가지고 파고들면 당황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혹은 그것을 부인하려면 거짓말을 낳게 되고 결국 이는 자신을 더 큰 위기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말싸움이나 토론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팩폭이라고 할 수 있다. 토론의 기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최근에 읽은 책(모든 논쟁에서 승리하는 법)을 떠올려보면 역시나 팩폭만큼 확실한 게 없다. 이미지만 떠올리면 논리적인 사람이 토론에서 이기고 설득을 잘할 것 같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결국 그중에 누가 더 방청객이 불편하지 않게 예쁘게 꾸면 낸 팩폭을 잘하느냐에 달려있다.

팩트폭행의 줄임말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팩폭의 단어 자체는 다소 과격하고 거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현실에서는 이 단어가 개그적인 요소나 장난스러운 용어로 많이 쓰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팩폭 행위 자체만을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방송에서 유명한 사람들을 보면 사실 팩폭을 잘하기 때문에 인기를 끌고 있다. 지금 떠오르는 사람으로는 소아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님,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 님, 스타강사로 불리는 김창옥 님 등이 그렇다. 최근에는 김창옥 님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 분의 특징도 의뢰인에 대해 '너 자신을 알라'는 식의 답변을 자주 한다. 다른 두 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의뢰인에게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명확하게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이 위처럼 팩폭만을 했기 때문에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요새 팩폭을 하는 사람은 너무 많고 팩폭을 했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조회수를 얻기 위해 일부 유튜버들이 팩폭만으로 영상을 만들거나, 연예인을 비난하는 팩폭 댓글을 달아도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법적으로 제재를 받을 수 있다. 핵심은, 의뢰를 했을 경우를 가정했을 때, 단순한 비난이냐 공감과 관심이 깔려있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인기 상담 전문가들을 보면 의뢰인에 대한 진심이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오은영 님은 아이의 과격한 행동 본 후 그 아이의 일상을 면밀히 관찰해 솔루션을 남긴다. 강형욱 님도 개의 일반화되지 못한 행동을 견주의 행동과 환경에서 찾으려고 한다. 김창옥 님의 화법은 팩폭을 하되 질문자의 기분이 나쁘지 않게 위트를 섞어가며 답변해 준다.

이분들의 강연을 듣고 솔루션을 받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돈이 있어도 쉽게 만날 수가 없다. 돈을 주고 팩폭을 받는다? 그런 것을 보면 사람들 팩폭을 싫어하는 것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고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발전하고 싶고 지금 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싶다. 인간은 그렇다. 다만 그 방법을 모르겠고 알면서도 잔소리로 들리면 그렇게 행동하기 싫어지는 것이 문제다. 부모님의 사랑을 알지만 청소년기에는 왜인지 반발심이 생긴다. 아내의 말이 맞지만 순간적으로 'No'라고 외치는 자신을 보며 실망한다. 이러한 모든 상황이 받아들이는 사람만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방이다. 전달하는 사람도 조금 더 세련되게 말하면 상황은 좀 더 좋아질 수 있다.


팩폭을 잘 이용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비난을 위해 남을 깎아내리기 위한 팩폭이 아니 성장하고 배움을 위한 팩폭이 되었으면 한다. 건전한 팩폭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건강하게 만들다. 팩폭이 없으면 사회는 정적이고 고인물이 돼버린다. 아픈 곳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때로는 기분 전환을 위해 매운맛도 필요하고, 정어리 수족관에는 메기도 필요하다. 다만 그것을 잘 받아들이도록 지적해야 한다. 선생님, 부모님, 상사 등 윗사람만이 아니라 후배 등의 아랫사람도 그럴 수 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대화의 장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고 그 안에서는 모두 유연해져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좋은 팩폭'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전 21화 가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