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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May 25. 2024

순서: 1, 2, 3

1.
꽃을 좋아한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좋아하게 됐다. 좋아하지 않았을 때는 시드는 게 너무 싫었다. 내가 꺾어온 꽃이, 사실은 꽃집에서 산 것이지만, 나 때문에 시든다는 느낌이 불편했다. 화분과는 다르게 물을 아무리 준다고 해서 다시 살아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내가 관망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질 뿐... 그래서 물 주는 것조차 나의 이기심이 드러나는 것 같아 싫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그랬다. "이게 얘 인생이야." 앗...! 그래 이게 꽃의 인생이구나. 어쩌면 합리화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게 달라 보였다. 야생에서 핀 꽃도 아니고 길러진 꽃인데 누군가에게 가장 화려하고 예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도 행복일 것 같았다. 마치 TV 속에서 인기 절정의 연예인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들을 보면 젊음이라는 찬란함에 놀란다. 요새 나의 유튜브에 유명인들의 리즈 시절을 보여주는 쇼츠가 뜨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있으면 리즈 시절이란 게 잘생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브래드 피트, 톰 크루즈 같은 배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외모로 놀림을 받았던 사람이라도 빛이 났다. 그냥 젊음이라는 것 자체가 큰 힘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종종 어른들이 화장을 진하게 하고 다니는 중고등학생들을 보며 "그냥 다녀도 예뻐~!"라고 하시는 말이 단순한 빈말이 아님을 점점 느낀다. 물론 그 말을 듣는 그 나이대 학생들은 '화장하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 정도로 들을 수 있겠지만...


2.
그런데 그 화려함을 뒤로하고 꽃은 시든다. 그게 슬프고 그걸 외면하고 싶어 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연예인도 마찬가지다. 인기의 절정을 찍고 나면 예전만 하지 못하다. 대부분 나이가 들면 역할도 바뀌고 대중의 관심이 떨어진다. 어렸을 때 일본 배우 중 기무라 타쿠야와 히로스에 료코를 정말 좋아했다. 그들의 연기를 보고 싶어 다음 카페에 가서 10분짜리로 잘라진 영상의 '무한 로딩'을 기다리며 봤던 기억이 있다. 정말 20년 전 드라마라면 기무라 타쿠야가 주연인 작품은 거의 다 봤을 정도로 그에게 빠져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어느 순간 그에 대한 쏟는 시간이 줄었다. 꽃처럼 그의 외모를 보고 애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예전 같지 못하다. 히로스에 료코에 대한 그것도 비슷하다.

그런데 사람인지라 그들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한 번 더 보게 된다. 각자의 삶이 바빠서 예전처럼 챙겨보지는 못하지만 마음속 깊게는 아직 그들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증거다. 가끔 이효리 님과 그녀의 팬들이 서로 시크하게 대화 나누는 것을 보면 참 재미있다. 지금도 슈퍼 스타인 이효리지만 예전만큼 온 국민에 둘러싸이고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는 팬은 마치 옆집 누나, 언니와 대화하는 것처럼 격 없이 대화한다. 이전과는 다른 애정 방법이다. 막 절절했던 사랑과 관심이 아니라 무던해 보이지만 언제나 함께하고 지지하는 애정이다. 이제는 이효리 자체를 좋아하는 것보다 그와 함께했던 추억이 그녀와 팬을 한데 묶는다.

그러면 그 이후는 또 어떻게 될까. 마이클 잭슨이나 비틀스가 떠오른다. 이미 두 그룹은 없고 보이지 않아도 그들에 대한 애정이 팬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들을 애정하는 이유는 모두 다르겠지만 그들과 함께 했던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그들을 못 잊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 남아 있는 이효리 팬들은, 그냥 예시이지만, 이효리가 없어진다 해도 그녀를 계속 애정하지 않을까. 원래 원수인 것처럼 대판 싸워도 애정이 있었던 그 시절이 생각나서 계속 만나게 사람이 아닌가.


3.
방 안에 꽃이 시든다. 그 화려했던 꽃잎이 하나씩 떨어진다. 나와 함께 있던 1주, 2주의 시간이 너무 고마웠다. 그동안 내 방을 더 빛나게 해주고 집에 들어오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듯이 눈부심은 영원할 수 없고 시들고 있다. 그런데 이게 원래 꽃의 삶이라고 생각하니 시들어도 그 자체로 멋들어지고 이쁘다. 아름답다고 해야 할까. 아름다움이라 건 꼭 화려함에만 있지 않은 것 같다. 찬란한 꽃잎은 말랐지만 2주간 나와 함께 하며 변화한 모습이 떠오르고 그 기억과 함께 그 꽃을 더 애정하게 된다. 아마 또 2주 후면 이 꽃은 내 방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래도 그때 함께 했던 그 추억은 영원할 것 같다. 아마 내 사랑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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