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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모

평가절하된 비운의 천재 뮤지션

by Charles Walker
스크린샷 2025-09-27 085247.png 김건모가 발표한 다수의 앨범들.

왼쪽부터 정규 10집 [Be Like] (2005), 정규 4집 [Exchange kg.m4] (1996), 정규 6집 [Growing] (1999), 정규 8집 [Hestory] (2003), 정규 1집 [Kim Gun Mo] (1992), 정규 3집 [Kim Gun Mo 3] (1995), 정규 9집 [Kimgunmo.9] (2004), 정규 5집 [Myself] (1997), 정규 12집 [Soul Groove] (2008), 정규 11집 [Style Album 11] (2007), 정규 2집 [김건모 2] (1994), 정규 13집 [自敍傳 '자서전], 정규 7집 [#007 Another Days] (2001), 미니 앨범 [50] (2016)이다. (아따 많다...)


사랑하는 마음이 클수록 그 대상에 대해 뭐라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김건모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니 할 말은 너무 많은데 정리가 되지 않아 꽤나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시간을 보냈다. 결국 이렇게 모니터 앞에 앉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무슨 말을 떠들어댈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은 채로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써 보려 한다.


처음 김건모를 TV에서 봤던 순간을 기억한다. 1992년이면 내가 미취학 아동이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온가족이 둘러앉아 TV를 보다가 엄마가 김건모를 보고 경악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유는 너무 못생겼다고...(ㅠㅠ) 나는 TV 속 김건모와 엄마를 번갈아 보면서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지만 따로 뭐라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분명한 건, '저 사람 노래 진짜 잘한다'라고는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어릴 때도 말이다.


김건모가 본격적으로 내 삶에 스며들기 시작한 건 아무래도 3집 '잘못된 만남' 때부터였을 것이다. 이때는 '잘못된 만남'에 나오는 랩을 얼마나 정확하게 잘 따라하느냐로 노래 실력을 판가름하던 시절이었다. 질 수 있나. 피나는 연습을 하고 학교에 가서 당당히 랩을 선보였을 때 친구들이 보여준 그 환호성. 잊을 수가 없다. '잘못된 만남'이 너무 좋으니까 지난 앨범들이었던 '핑계',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도 함께 찾아 따라 부르곤 했던 기억이 난다.


'잘못된 만남' 앨범은 무려 300만 장을 팔았는데, 그 말이 거짓이 아닌 게 그 시절 어떤 친구 집에 놀러 가든 김건모 테이프가 무조건 있었다. 집에 없으면 차에라도 있었다. 아마 공식적인 기록이 300만 장일 뿐, 비공식적으로는 더 팔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김건모는 국민가수가 되었고, 내게는 최애 가수가 되었다. 다들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할 때 나는 오로지 김건모였다. 불과 1년 뒤 H.O.T.가 나오면서 한풀 꺾이긴 했지만...


1,2,3집을 갓 들었던 초등학생 때에는 아무래도 댄스곡 위주로 들었는데, 자라면서 음악에 대해 조금 알게 되면서 이 앨범들이 얼마나 대단한 성취인지를 깨닫게 되면서 김건모의 진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특히 2집의 '혼자만의 사랑' 같은 걸 들어보면 해외 팝을 굳이 찾아 듣지 않아도 제대로 된 R&B의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3집의 '멋있는 이별을 위해'나 '넌 친구? 난 연인!' 같은 곡은 당시 유행하던 뉴 잭 스윙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엿볼 수 있다. 그러니까 김건모는 단순히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니라 음악적으로 천재성이 어마어마한 사람인 거다. TV 예능 같은 걸로 불필요하게 소모된 면이 너무나도 아쉽다. 김건모는 대한민국에서 평가절하된 비운의 천재다!!


어쨌든 이후에 나오는 4집 '스피드', 5집 '사랑이 떠나가네'까지 모두 성공을 거두며 김건모는 승승장구한다. 4,5집의 성공이 시사하는 바는 굉장히 크다. 3집까지 함께했던 프로듀서 김창환과 이별한 후 홀로 만든 앨범으로 거둔 성공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김건모는 그저 가창력만 뛰어난 가수가 아닌, 앨범을 진두지휘하여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뛰어난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로서의 타이틀도 거머쥐게 된다.


5집 이야기를 잠시 해 볼까 한다. 5집에는 유난히 명곡이 많다. 타이틀곡은 '사랑이 떠나가네'였지만, 그에 못지않은 인기를 얻은 흥겨운 댄스곡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이치현의 원곡을 더욱 달콤하게 리메이크한 '당신만이'도 큰 인기를 얻었다. 그 밖에도 숨은 명곡이 많은데, 연인과 함께 맞이하는 평화로운 아침을 속삭이듯 노래한 '아침풍경', 위트 넘치는 노랫말과 재즈 편곡이 인상적인 '이빠진 동그라미', 포크 가수 권진원과 듀엣으로 부른 팝 발라드 '오늘처럼 이렇게', 예측 불허의 독특한 진행을 선보이는 '이별 없는 사랑', 세상 슬픈 마이너 발라드 '독백'까지... 명곡이 너무나 많다.


1999년, '부메랑'을 타이틀로 한 6집 앨범을 발표하지만 이 앨범은 김건모의 디스코그래피 역사상 상업적으로 가장 실패한 앨범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이미 [Why So Underrated?]에 써 두었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하고, 7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7집을 발표하면서 김건모는 '초강수'를 두게 된다. 이 앨범을 100만 장 이상 팔지 못하면 가요계를 은퇴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6집에서의 부진이 그를 필요 이상으로 자극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밀리언 셀러를 달성하는 데에 성공하긴 했지만 그 전까지 얼마나 피말리는 시간을 보냈을까... (이래서 말을 조심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신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다.)


7집은 수록곡 수는 9곡으로 많지는 않지만, 알짜배기 곡들로 야무지게 채워진 좋은 앨범이다. 타이틀곡은 누구나 아는 히트곡인 '미안해요'이다. 이 곡이 그저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한 곡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속 많이 썩인 아들이 어머니에게 건네는 말이라고 한다. 그 밖에도 이별 앞에서 찌질하게 구는 모습에 실소를 머금게 되는 흥겨운 댄스곡 '짱가', 보사노바 분위기를 연출한 '바보', 故 김현식의 원곡을 아름답게 리메이크한 '여름밤의 꿈' 등을 추천한다.


7집과 10집 사이에 위치한 8,9집은 어쩐지 존재감이 좀 약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앨범 자체의 질이 나빴기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고,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음원' 시대가 도래하며 시장 구조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나는 사실 8,9집도 너무나 좋게 들었고 '역시 김건모' 하며 엄지를 추켜세웠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그 이전만큼 뜨겁지 않았다. 이때부터 김건모의 직계 후손(?) 격이었던 김범수, 나얼 등이 선전하기 시작하며 대중들의 포커스가 이동하기도 했다. 지디가 노래했듯이 역시 영원한 건 절대 없다.


하지만 국민가수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김건모는 미국의 소울 거장 레이 찰스(Ray Charles)의 전기 영화 [레이]를 보고 영감을 받아 앨범 전곡을 레이 찰스 풍의 올드 재즈 소울 느낌으로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바로 전설의 10집 앨범 [Be Like]이다. 타이틀곡은 '서울의 달'. 하여간 이 양반 오뚝이 정신은 알아줘야 한다. 넘어질 만하면 또 일어나고, 잊힐 만하면 또 '나 안 죽었어!' 하며 짠 하고 멋지게 나타나는. 이런 게 김건모의 참매력이지.


내가 워낙 소울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10집 앨범은 두말할 것 없이 전곡 추천이다. 연주만 들어보면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제작했다고 믿겠다. 그런데 무려 보컬이 김건모이다. 더 할 말이 없다. 그저 음악을 들어보라는 말밖에는... 어쨌든 10집 이후에 '히트'라고 할 만한 기록은 없지만, 11집의 '허수아비'나 13집의 '어제보다 슬픈 오늘' 같은 곡들이 소소하게 화제를 모았다.


모종의 사건들로 그간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었다. 그러나 김건모는 끝내 그 모든 아픔을 이겨내고 9월부터 콘서트를 시작하며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김건모 특유의 오뚝이 정신으로 넘어졌으니 일어나겠다는 것이다. 크게 넘어졌으니 이번엔 크게 일어날 때일까. 언젠가 발표할 14집 앨범이 너무나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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