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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다시 나올 수 없을 대한민국 최고의 록 보컬리스트

by Charles Walker
스크린샷 2025-09-27 190815.png 김경호가 발표한 다수의 앨범들.

왼쪽부터 김경호 정규 1집 [마지막 기도] (1995), 정규 2집 [Kimkyungho 1997] (1997), 정규 3집 [00:00:1998] (1998), 정규 4집 [For 2000 Ad] (1999), 정규 5집 [와인] (2000), 정규 6집 [The Life] (2001), 스페셜 앨범 [시작(始作)] (2004), 정규 7집 [Open Your Eyes] (2003), 정규 8집 [Unlimited] (2006), 스페셜 앨범 [Alive] (2009), 정규 9집 [Infinity] (2007)이다.


최근 앨범들은 갖고 있지 않지만, 9.5집인 2009년 발표작까지는 꾸준히 챙겨 들어왔다. 김경호의 목소리를 거부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옐로우 톤의 미성과 악마를 연상케 하는 샤우팅, 그로울링 등 록에서 사용되는 야수 같은 소리를 자유롭게 오가며 무대 위에서 최고의 카리스마를 뽐내는 김경호는 록 그 자체였다. 공개방송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하여 당시 대표곡이었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과 스키드 로우(Skid Row)의 'Youth Gone Wild'를 패기 넘치게 불렀던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세상에 저런 가수가 존재한다고?'였다.


끝을 모르고 음이 올라가는데도 오히려 위에 몇 음 정도는 넉넉하게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도대체 저 가수는 어떻게 하면 저런 소리를 자유자재로 낼 수 있는 걸까. 실로 경이로웠다. 비록 '마지막 기도'를 타이틀로 내걸고 발표했던 1집 앨범은 상업적으로 실패했지만, 2집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의 성공으로 1집까지 소소하게 다시 주목받았던 기억이 있다.


나는 김경호 1집에서 특히 좋아하는 곡이 있다. 다들 미친 고음이 연발로 따발총처럼 난사되는 3번 트랙 '자유인'을 좋아하겠지만, 나는 그보다도 2번 트랙인 '긴 이별'을 좋아한다. 김경호가 록적인 기교를 모두 절제하고 정직하고 시원하게 내지르듯 멜로디를 정확하게 짚어 불러주는데 이게 또 슴슴하니 매력적이다. 록에서 느낄 수 있는 극한의 짜릿함을 맛보고 싶으신 분들은 3번 트랙 '자유인'을 반드시 들어보시라.


2집이야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과 '금지된 사랑' 등 워낙 히트곡이 많았던 앨범인 데다가 수록곡들도 거를 타선 없이 대체로 좋아서 별로 얘기할 게 없지만, 3집과 4집은 반드시 이야기해야만 한다. 내가 생각하기엔 김경호라는 록커가 최고의 기량을 갖고서 자신의 육과 영을 모조리 갈아넣어 만든 두 장의 앨범이 바로 3집과 4집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먼저 3집은 '나의 사랑 천상에서도'라는 곡을 타이틀곡으로 내걸고 있지만, 타이틀곡만큼 크게 화제가 되었던 곡은 1번 트랙 'Shout'였다. 이 곡의 인트로에 나오는 말 그대로 '내지르는(shout)' 그 소리를 낼 수 있느냐, 없느냐로 가창력의 유무를 판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고음불가였던 나는 '사람이면 그런 소리를 낼 수 없다'라며 스스로 사람이기를 선택했다. 하지만 함께 노래방엘 같이 다니던 친구들 중에서는 (소리의 질은 차치하더라도) 그 음을 내는 녀석들이 꽤 있었다. 속으로 '저 정도라도 났으면 좋겠다'라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 밖에도 3집은 정말 명곡이 많다. 청춘들의 꿈을 응원하는 '꿈을 찾아 떠나', 김경호만의 서정적인 발라드 느낌을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곡 '이수', 애절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한 록 발라드의 정수 '영원의 성', 콘서트 때 인트로 레퍼토리로 자주 활용되는 'Exodus' 등을 추천한다.


이듬해인 1999년, 김경호는 4집을 발표한다. 4집의 타이틀곡은 '비정'으로,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밖에도 세기말의 어두운 분위기를 프로그레시브 록 풍으로 풀어낸 'For 2000 Ad'를 위시하여, 애절한 록 발라드 '화인', 고운 목소리로 캐쥬얼하게 불러낸 '이별보다 슬픈 사랑', 내가 개인적으로 4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인 '내 그리움 널 부를 때', 스틸하트(Steelheart)의 영향을 받은 듯한 스피디한 록 넘버 'Rock'n Roll', 타이틀곡 못지않게 사랑받았던 '아름답게 사랑하는 날까지'를 추천한다.


김경호 5집은 애증의 앨범이다. '와인'이라는 타이틀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무리한 공연과 녹음 연습 등으로 인해 불행하게도 성대결절을 겪게 된 것이다. 김경호가 아무리 튼튼한 강철 성대를 가졌다고 해도 계속해서 고음을 난사하고 스크래치와 그로울링을 남발하는데 버텨낼 재간이 있나. 요즘 시대에 데뷔했다면 체계적으로 관리도 받으면서 오랫동안 좋은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시절은 가수에게 정말 엄혹했다. 소속사는 김경호가 성대결절로 고통스러워하는데도 계속해서 라이브 공연을 강행했고 결국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채 6집 앨범까지 발표하기에 이른다. 정말 안타깝다.


6집 앨범은 성대결절이 재발하여 제대로 된 활동도 펼치지 못하고 접어야 했다. 이때부터 김경호의 기나긴 방황이 시작된다. '아버지'를 타이틀곡으로 한 7집은 김경호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긴 머리를 자르고 후속곡으로 핑클의 'Now'를 리메이크한 버전으로 춤까지 추는 등 화제성 면에서는 선전했지만, '변절자' 낙인이 찍힌 채 록커들로부터는 소외당했다. 특히 절친이었던 박완규로부터 원색적인 비난을 받고 서로 크게 다투어 몇 년 동안 손절하기도 했다.


김경호 입장에서는 예전 같은 소리를 낼 수도 없고, 뭐라도 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대중에게 알려야 했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이해해 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김경호라고 록커의 자존심을 몰랐을까. 지금이야 박완규와도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예전 기량을 서서히 되찾아가고 있지만 그때의 김경호는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8집과 9집은 성대결절을 겪고 나서 낸 앨범이라 힘이 많이 빠져 있다. 특히 8집의 타이틀곡인 '사랑, 그 시린 아픔으로'를 강력 추천한다. 김경호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6년부터 '대퇴부 무혈성 괴사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뼈가 썪는 고통마저 겪어야 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저 가진 재능으로 열심히 살고자 했던 록커에게 왜 이런 시련을 연이어 주는 것인가. 희귀병이기 때문에 원인을 모르긴 해도 아마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이런 병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정말 김경호의 과거 인생을 돌이켜보면 저렇게 착한 사람이 왜 저렇게 고통받아야 하는 건가 싶어 마음이 아프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2011년, 소식이 없어 잠잠하던 차에 돌연 '나는 가수다'에 김경호가 출연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반가움보다는 '아프다고 했는데 괜찮을까?'라는 걱정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무대를 보고 나니 예전만큼의 날카로운 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김경호 특유의 파워풀한 카리스마는 여전히 남아 있었고, 록커로서의 아우라 또한 그대로여서 안심했다. 아무튼 그 무대를 시작으로 김경호는 점점 자신감을 되찾아 갔고, 프로그램 내에서 1위를 가장 많이 한 가수라는 기록도 세운다(사실 전성기 때랑 비교하면 김경호랑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가수가 몇이나 있겠는가.).


불과 얼마 전인 2024년 5월 20일, 정규 11집 [The Rocker]를 발표하며 건재함을 과시하였고, 가장 최근에는 부활의 김태원, 박완규, 그리고 김종서와 '긴머리 사총사'를 결성하여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는 등 잘 지내고 있는 듯 보인다. 이제부터는 몸도 마음도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좋은 음악을 계속 들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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