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적인 감성을 지닌 탁월한 멜로디 메이커
자. 일단 너무 많다. 팬 입장에서 가수가 앨범을 많이 내 주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 문득 김동률 팬들이 참 부러워진다. 요즘엔 드물게도 정규작 발표 텀이 길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또 준수한 퀄리티의 정규 7집을 발표하며 등장하리라는 믿음을 가지며 정리를 시작해 보자.
왼쪽부터 라이브 실황 앨범 [KIMDONGRYUL LIVE 2012 감사 / 2014 동행] (2015), 스페셜 앨범 [kimdongrYULE] (2011), 정규 5집 [Monologue] (2008), 정규 1집 [The Shadow of Forgetfulness] (1998), 베스트 앨범 [Thanks : The Best Songs 1994-2004] (2007), 정규 3집 [귀향(歸鄕)] (2001), 미니 앨범 [답장+] (2018), 정규 6집 [동행] (2014), 싱글 [산책] (2024), 싱글 [옛 얘기지만] (2024), 정규 4집 [토로(吐露)] (2004), 싱글 [황금가면] (2023), 정규 2집 [희망(希望)] (2000), 라이브 실황 앨범 ['05 The Second Concert 招待] (2005), 라이브 실황 앨범 ['09 2008 Concert, Monologue] (2009), 이상순과 함께한 베란다 프로젝트 정규 1집 [Day Off] (2010), 전람회 정규 1집 [Exhibition] (1994), 정규 2집 [Exhibition 2] (1996), 정규 3집 [졸업] (1997)이다. (헥헥...)
내가 김동률을 가장 좋아했던 시기는 2001년부터 2008년까지로, 정규 3,4,5집이 그에 해당한다. 대중과 비평단 모두에게 골고루 사랑받았던 시기와도 일치한다. 대중들에게는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사랑한다는 말', '이제서야', '욕심쟁이', '아이처럼', '다시 시작해보자', '출발'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나는 3집과 4집을 즐겨 듣던 2000년대 초반쯤 본격적으로 빠져들게 되어 전람회 시절부터 1,2집까지 챙겨 듣다가 2집의 실험적인 느낌에 잠시 당혹감을 느꼈던 적도 있다. 요즘이야 아티스트들의 실험 정신에도 마음이 많이 열려 있는 편이었지만 그때는 나도 고딩이었다. 음악에 대해 뭘 알았겠는가? 그때 2집을 듣고 나서 '대체 이건 뭐야?' 싶은 생각에 한동안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작곡과에 진학하려고 준비하던 같은 반 친구에게 '김동률 2집은 별로다'라고 말했는데, 그 친구가 조용히 내게 이어폰 한쪽을 건네며 '이거 한 번 다시 듣고 생각을 다시 해 보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게 김동률 2집에 수록된 '염원'이라는 곡이었다. 나 혼자 들을 때는 그냥 휘뚜루마뚜루 듣고 넘겼으니 당연히 몰랐겠지만, 그 친구가 곡의 요소 하나하나에 대해 설명해 주면서 이 부분은 이런 부분에서 의미가 있고 어쩌고저쩌고... 하며 다시 들으니 너무 좋은 것이다! 그때 그 친구가 나의 막귀를 뚫어주며 음악을 듣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준 것이다. 내가 워낙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이라 당연히 그 시절 친구들 그 누구와도 연락이 되지 않지만, 내게 음악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준 그 친구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고 있다.
아무튼 김동률은 음악, 특히 작곡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신처럼 떠받들어지는 존재인 것 같다. 나야 그저 음악을 좋아하는 동호인에 불과하기에 내공이 깊지 않아 잘 모르지만, 확실한 건 김동률이 만들어내는 멜로디는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것, 그리고 그가 그 멜로디를 표현하는 방식이 하나같이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아마 내가 작곡과 편곡을 전문적으로 배우게 되면 김동률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깊어질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노래 한 곡을 설계하고 건축으로 쌓아올린다는 작업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작곡을 전공한 사람들은 김동률이 사용하는 독특한 화성 진행과 동서양을 아우르는 테마 설정, 재즈 펍부터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타일까지 자유롭게 넘나드는 편곡의 스케일까지 칭찬하느라 입에 침이 마르도록 혀를 내두른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해야 할까.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이 선생님은 너무 커다란 선생님인 거다. 도저히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되지 않는 너무나 큰 선생님.
정규 6집부터 서서히 그의 음악에서 힘이 좀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맥빠진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고, 좀 더 여유롭다고 해야 할까. 이완되었다고 할까.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밀도가 가벼워진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다가 한 번 더 당혹감을 줬던 게 2023년에 발표한 싱글인 '황금가면'이었다. 김동률이? 갑자기? 황금가면? 히어로물???
잘못 풀어내면 굉장히 우스꽝스러워질 주제가 판타지 아니면 히어로물인데, 김동률은 역시 김동률이었다. 당혹감은 잠시였고, 곡을 듣자마자 그저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꿈이라는 게 어떤 건지 잊고 산 지가 어언 몇 년인가. 어느새 황금가면 덮어쓰고 어린 시절 꿈 찾아 날아다니는 나를 발견했다. 결국 듣는 이를 설득시키는 건 이야기를 만듦새 있도록 뚜렷하게 제시해 줄 수 있는 실력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2023년, 2024년은 싱글 발표만 드문드문 하며 대중들에게 '나를 잊지 마오' 정도로만 활동하고 있는데, 아마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야무지게 채워진 정규 7집을 발표하지 않을까. 그의 음악성이야 철석같이 믿고 있으니 내 주시기만 한다면야 열심히 듣지요. 아무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