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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한

한국에 R&B를 처음 알린 전령

by Charles Walker
스크린샷 2025-10-14 171613.png 김조한이 발표한 앨범들.

왼쪽부터 정규 1집 [Jo Han] (1998), 정규 4집 [Me, Myself, My Music] (2005), 정규 5집 [Soul Family With JoHan] (2007), 정규 6집 리패키지 ['이별은 잊은듯이' 김조한 6th Album 'Once In A Lifetime' Repackage] (2016, 정규 3집 [2gether 4ever] (2001)이다.


1993년, 김조한은 그룹 솔리드의 메인 보컬로 데뷔하여 '이젠 나를', '이밤의 끝을 잡고', '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천생연분' 등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당시 R&B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었던 대중들에게 R&B를 알리는 역할을 톡톡이 하였다. 솔리드 멤버 세 명 전부가 교포 출신으로 미국 문화에 익숙하기도 했을 테고, 그들이 하는 그 R&B라는 음악이 당시 대중들에게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을 것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솔리드가 알린 R&B는 너무 단편적인,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솔리드의 활동 시기가 너무 짧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변명을 내놓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적어도 팀의 중심에 있었던 김조한의 솔로 앨범에서도 뭔가가 보여야 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5집 이전까지 김조한은 안전한 선택만을 고수해 왔다. 솔리드가 그간 선보여 왔던 달달한 러브 송 류의 R&B. 즉 보이즈 투 멘(Boyz II Men)이나 테이크 식스(Take 6), 브라이언 맥나잇(Brian McKnight), 베이비페이스(Babyface) 등이 구사하던 종류의 R&B 음악으로만 초지일관한 것이다.


물론 R&B 뮤지션이라고 해서 R&B의 하위 장르를 모두 잘해야 한다는 것도 대중의 욕심일 수 있다. 김조한은 그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했을 뿐이라고, 애써 위로하기도 했다. 5집 앨범을 듣기 전까지는.


2007년에 나온 김조한의 5집 [Soul Family With JoHan]은 그 이전까지 발표한 김조한의 앨범들과는 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바로 '소울' 음악을 향한 지향성이 이 앨범에서 엿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첫 번째 트랙인 '말해줘'를 반드시 들어보라.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밴드가 직접 레코딩 세션을 해 주었고, 가수 앤(Ann One)이 명품 코러스를 보태 주었으며, 곡 후반부에 터지는 김조한의 폭풍같은 애드리브가 그야말로 압권이다.


물론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성시경이 작곡해 준 발라드 '사랑이 늦어서 미안해'이고, 타이틀곡으로만 보면 또 다시 안전한 선택을 한 셈이지만, 앨범 수록곡의 분위기는 그전과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말해줘'도 그렇지만, 빅뱅의 태양이 코러스로 힘을 보탠 R&B 발라드인 2번 트랙 '조금만 사랑할걸'도 좋고, 윤상의 '이별의 그늘'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5번 트랙 '바보 같은 나'도 훌륭하다. 잔잔하면서도 아련한 R&B 감성이 인상적인 7번 트랙 '운명이라면'도 좋고, 김조한의 영혼을 오롯이 갈아넣어 만든 듯한 11번 트랙 'This Broken Heart Of Mine'은 러닝타임이 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끝까지 듣기를 추천한다. 김조한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애드리브 라인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교보재이다.


사실... R&B를 깊이 좋아하다 보니 이렇게 얘기하긴 했지만 나도 이렇게 R&B 덕후가 되기 전 일반 대중의 입장이었을 때는 김조한의 3집과 4집을 많이 좋아했었다. 특히 3집 [2gether 4ever]는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 타이틀곡 '오늘까지만'은 그 당시 내 노래방 18번이었고, 후속곡이었던 'Love'는 대학교 1학년 때의 나에게 '단대 가요제 1위'라는 타이틀을 안겨준 고마운 곡이었다. 추억만으로 치부하기에는 앨범의 완성도도 매우 높았다. 수록곡이었던 'Give Me Your Love'는 지금 들어도 세련되고 멋지다.


세월이 조금 흐르고 나서는 1집도 듣기 좋았다. 타이틀곡 '널 위해 준비된 사랑'을 불러서 당시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를 반하게 만들기도 했었다(아, 옛날이여!). 레게 리듬을 살짝 가미한 '날 믿어줘'라든지, 아름다운 선율이 듣기 좋은 '자연스러워', 전형적인 마이너 발라드 '선' 같은 곡들도 추천할 만하다.


뭐, 결국 아쉬운 앨범은 6집 하나밖에 없다는 소리가 되겠다. 내가 가진 김조한 앨범 중에서 우선순위를 (굳이) 정하자면 5집 > 3집 > 1집 > 4집 > 6집 순이다. 6집은 명반으로 손꼽히는 5집 다음에 나온 앨범이라 아쉬움이 더욱 컸다. 5집에서의 맹활약(?)을 보면 6집에서 뭔가를 보여줬어야 하는데 오히려 타이틀곡 표절 논란 등 시끄러운 소리만 들리고 다른 곡들의 퀄리티도 그다지 좋지 않아 실망스럽기만 했다. 아예 갖고 있지도 않은 2집보다도 6집은 아픈 손가락 같은 느낌이다. 언젠간 좋게 느껴질 부분이 있으려나 싶어서 갖고는 있는데 아직도 '애'보다는 '증' 쪽에 무게추가 기우는 느낌은 참 어쩔 수가 없다.


앞서 김조한이 R&B를 너무 단편적으로만 알렸다고 비판적인 논조로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한 장르를 대중에게 알린다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것도 혼자서 그 엄청난 일을 감당하라고 말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김조한이 새로운 문화를 위화감 없이 들고 들어와서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섞이게 만든 그 공로를 반드시 인정해야 하고 가치를 높이 사야 한다. 나머지 부분들은 능력이 뛰어난 또 다른 후배들이 하고 있으니, 김조한은 그 후배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마련해 준 것만으로도 이미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그래서... 다음 앨범은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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