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홀릭

서사에 서정을 더하는 곱고 슬픈 목소리

by Charles Walker
스크린샷 2025-12-29 오전 10.34.52.png 러브홀릭 [Dramatic & Cinematic] (2008)

밴드 러브홀릭에 빠져 살았던 건 군대 시절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밴드 음악보다는 소몰이풍 R&B 비스무리한 발라드 종류를 많이 들었는데, 군대에 가니 내가 울고 싶은데 내가 듣는 음악까지 같이 울고 있으니까 어느 순간 염증이 확 몰려왔다. 그때 함께 생활관을 쓰던 (음악을 참 많이 알던) 동기로부터 하우스룰즈(Houserulez), 클래지콰이(Clazziquai) 등을 추천받고, '역시 이거야!' 하며 무릎을 탁 쳤다. 이 담백함. 이 참크래커같은 맛! 이걸 원했던 거야!


그래서 클래지콰이와 같은 레이블인 플럭서스 소속의 밴드였던 러브홀릭도 다시 꺼내어 듣게 되었다. 당연하겠지만 러브홀릭의 존재를 모를 수는 없었기에 대표곡이었던 'Loveholic', '놀러와', '화분' 같은 곡들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 장의 정규 앨범을 통째로 들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 정말 듣고 있자니 지선의 목소리는 어찌나 스산하게 슬프던지. 결코 우는 법이 없지만 듣는 사람을 울게 만드는 처연한 슬픔이 목소리 자체에 탑재되어 있다. 신비롭도록 아름답게 노래하는 보컬이다.


상병 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러브홀릭의 이 앨범 [Dramatic & Cinematic]이 발표되었다. 이 앨범은 그동안 러브홀릭이 드라마와 영화에 납품(?)해 온 곡들을 모아서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엮어낸 것인데, 이건 거의 베스트 앨범이라고 봐야 한다. 곡 제목 옆에 어떤 드라마 혹은 영화에 삽입되었는지도 함께 표기되어 있기 때문에 작품을 본 사람에게는 반가움을, 작품을 보지 않은(못한) 사람에게는 상상하는 즐거움을 두루 준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에 OST로 25곡이나 쓰였다니 새삼 러브홀릭이라는 밴드가 참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밴드 멤버가 보컬 지선을 비롯하여 일기예보의 '강현민', 그리고 지금은 영화음악감독으로 더 유명한 '이재학'이다. 음악으로 잔뼈가 굵은 세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세 장의 웰-메이드 앨범을 뽑아냈고, 그 중에서 좋은 곡들을 추리고 추려 영화나 드라마의 OST로 수록한 것이다. 좋은 음악 한 곡을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이들은 좋은 음악'만' 만들었다.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한 가지 소름돋는 사실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렇게 25곡이나 되는 수록곡으로 꽉 채운 앨범이지만, 수록되지 못해 아쉬운 곡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바로 2집 앨범의 타이틀곡 'Sky'이다. 이 곡은 내가 러브홀릭의 노래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자 군대 시절 생활관 창가에 기대어 눈부시게 비치는 햇살을 보며 (자주 눈물을 훔치며) 들었던 곡이다. '하늘을 보면 하늘만 보면 니가 떠올라 자꾸 눈물이 흘러'라니. 부대에 갇혀 세상 밖을 꿈꾸는 군인에게 이런 노랫말은 반칙이다. 그런데 이 곡이 수록되지 않았다. 당연히 OST로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못내 아쉽다.


훗날 러브홀릭은 지선이 떠나면서 '러브홀릭스'라는 팀으로 재편되어 명맥을 이어가지만 지선이 있던 시절만큼은 미치지 못하면서 흐지부지되고 만다. 그리고 또 먼 미래에는 지선이 무려 '싱어게인'에 출연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저 사람이 왜 저기에?', '심사를 해도 될 사람이 심사를 받고 있다니?'라며 정말 깜짝 놀랐고, 목소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한 번만 더 놀라면 수명이 줄어들 것 같아 가슴을 부여잡고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또 한 번 러브홀릭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분명한 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러브홀릭의 음악은 어느 소중한 과거의 한 장면으로 사람들에게 분명히 각인되어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이들의 불분명한 미래를 기대하는 것보다는 과거의 기억을 가끔 꺼내어 보며 '그땐 그랬었지...'하고 옅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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