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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룬 Feb 27. 2024

아빠, 그냥 눈치껏 하는 거야



캐나다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4학년 아들과 40대 아빠.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눈다.


"아빠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진짜 안 들려."

"아빠, 다 들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눈치껏 해. 나도 그냥 눈치껏 하는 거야."



 Grade 4의 중간학기로 들어간 아들은 3학년이 되어서야 파닉스를 배웠다. 말도 늦고, 발음도 어눌했던 아이에게 괜한 스트레스가 되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미루어 두었던 영어공부. 부랴부랴 3학년이 되는 해의 1월부터 파닉스를 가르치고, 영어를 시작했다.


요즘 아이들 치고는 늦게 시작한 영어. 유치원 때부터 달려온 친구들과의 갭을 줄이기 위해 매일 열심히 영어 만화를 시청한 아들이었다. 아침저녁으로 페파피그부터 리틀팍스까지. '과연 이게 효과가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미 시작이 늦은 아이. 초등학교 1학년 동생들과 한 반에 보내고 싶지는 않고, 영어로 스트레스를 주기도 싫었기에 '엄마표 영어' 관련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영상 보기와 원서 읽기에 집중한 1년이었다. 


만화를 보면서 "엄마, 유치원이 free school 이야?", "엄마 be 가 되다야? I'll be a hero! 하잖아. 히어로가 된다는 거 맞지?" 말 그대로 눈치껏 단어의 뜻을 알아가던 아들. 1년쯤 지나니 대충 알아듣는 것 같긴 한데, 과연 이 아이가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살 수 있을까? 


인터넷에 경험담을 찾아보니 영어를 못해서 친구들과 말을 못 하고 집에 와서 우는 아이, 부당한 일이 생겨도 당하기만 하는 아이,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아이 등등 '제발 영어 가르쳐서 외국에 나오세요!!'라는 메시지에 잔뜩 높아진 불안감. 학교를 보내는 첫날, '제발 같은 반에 한국아이가 한 명만 있게 해 주세요.' 기도를 할 지경이었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들. 엄마의 터져 나오는 질문에 그럭저럭 50%는 알아들었다고 할만하단다. 그 말을 들은 아빠가 푸념을 하자, 눈치껏 알아들으면 된다는 아들. 그 씩씩함이 대견하다. 정말 알아듣고는 있는 걸까 매일을 조바심으로 보내던 날들. 아이가 일주일 만에 영어로 시를 써왔다. 




On a day like this


It looks like a foggy day

I smell wind in the air

I feel cold hands

I hear an airplane in the sky

On a day like this,

I like to play at home



눈치껏 영어 하는 아들의 첫 영시. 영어로 글을 써본 적도 없는 아이가 영어로 시를 썼다. 현지 4학년 아이들에 비하면 부족한 수준의 영어지만, 나무랄 곳 없는 한 편의 시를 쓴 아이. 역시 아이들은 참 빠르다. 괜한 조바심에 걱정하던 마음을 내려놓게 해 준 아이의 시였다. 눈치껏 잘하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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