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피의 기쁨과 슬픔
스물 여섯 살, 내 친구, 브랜드 전략실의 이채은 피디(이하 채디)는 늘 바쁘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진짜 바쁘다. 자리에 앉아 있는 일이 잘 없고 항상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상대는 매니저님이 될 때도, 실장님이 될 때도, 대표님이 될 때도 있다. 회사에서 그 정도로 불태우면 보통 집에 가서 방전되기 마련인데, 쉬는 시간 마저도 그냥 넘기지 않는다. 어떤 날엔 주짓수를 배우러 도장에 가고 어떤 날은 흔히 부업이라 말하는 작가의 신분으로 변신한다. ‘닳지 않는 건전지 같은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딱 들어맞을 정도로.
내가 채디와 처음 마주한 때를 회상하려면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린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학생으로 만났다. 당시 아무것도 모르고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아왔던 나에게 채디의 등장은 신선 그 자체였다. 귀에 줄줄이 달려있는 피어싱이 눈에 가장 먼저 띄었다. 한 평생 귀에 구멍을 낼 수 있는 자리라고는 귓볼 뿐이라고 생각해왔기에 ‘세상에 저런 사람도 있구나’의 저런 사람 역할을 줄곧 맡았었다.
신기했던 첫인상은 친한 친구가 된 후에도 이어졌다.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채디는 하나씩 알려줬고, 난 새로운 즐거움을 배우게 됐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중간고사가 끝내고 시간이 차고 남았던 어떤 오후에 교실 한켠에서 함께 작은 핸드폰 속 웹툰을 들여다봤던 순간이다. 그 때 처음 좀비물을 접했던 나는 시간이 지나 좀비와 스릴러 장르의 매니아가 되었다. 아마 내 드라마 취향은 채디가 포문을 열어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우정에 항상 기쁨만 있었던 건 당연히 아니다. 상처 되는 말들을 주고 받은 적도 있고, 때문에 한두 해 정도 서로의 소식도 모른 채 지나 보냈던 시간 역시 있었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 돌아 우리는 만났고, 조금씩 서로의 이야기를 꺼내 놓으며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인터뷰 차 겸사겸사 채디에게 최근 가장 기쁜 일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나와 친구라는 사실이 제일 기쁘다는 장난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거짓말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지만 사실은 매우 흐뭇했다는 걸 이 글을 통해 알린다. 진짜로 흐뭇했다.
당연히 나라는 친구를 얻은 것, 인생의 최고 되는 기쁨이겠지만 (장난이다. 아니? 사실 장난 아님.) 차치하고 내가 보는 채디의 기쁨은 이렇다. 앞서 말했듯 채디는 정말 바쁘다. 근데 절대 억지로, 누가 시켜 바쁘게 사는 게 아니다. 일을 벌리고 그 일을 실행하는 과정 속에서 고초도 겪지만 무언가를 해내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다. 흔히들 자기효능감이라고 하지 않나. 능동적으로 어떤 일을 목표로 세우고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기대와 신념에 따라 사는 사람. 거창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렇다. 내가 오래 봐서 안다. 그래서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도 바쁘다고 느끼지 못하고 해야할 일을 더 열심히 찾아다니는 걸지도 모르겠다.
욕심이 있는 만큼, 잘하고 있는 만큼 기쁨에 비례하게 슬픔도 종종 찾아온다. 한계를 느끼거나 비교군에 놓여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보다 훨씬 잘 하는 것 같을 때, 채디는 슬픈 눈을 하곤 한다. 그 마음을 알기에 같이 슬픈 눈을 하지만, 걱정까지는 하지 않는 편이다. 내일이면 또 에너자이저가 되어 여기저기 날아다닐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최고의 친구인 나는 최고의 친구답게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서 입에 물려준다. 혈관에 카페인이 돌면 채디는 또 열심히 뛰어갈 것이다. 슬픈 눈은 금방 없었다는 듯이, 또 다른 기쁨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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